백제 석공 魂과 과학기술 콜라보…미륵사지석탑 보수현장을 가다
겨울 눈 속 돌깍는 소리가 빈 절터 가득
석공 20명 난방없이 구슬땀
해체 전 6층까지의 모습 살리면서 구조적 안정성 잡아
2017년 7월께 완료
지난 16일 함박눈이 내린 미륵사지 모습. 서쪽부터 가설덧집 속 보수중인 미륵사지석탑, 중간의 목탑지, 동쪽의 동탑이 있으며 절터 뒤편으로 용화산(미륵산)이 보인다.
[익산=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미륵사지에 갔다. 백제 시대 최대의 사찰. 함박눈이 내렸다. 눈은 폐사지(廢寺址)와 주변 마을과 폐사지를 품은 용화산을 두루 덮었다. 용화산은 1300여 년 전 백제 무왕이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곳. 운치가 비할 데 없다. 돌을 다듬는 정소리가 쉼 없다. 미륵사의 존재를 알려주는 부서진 석탑을 새로 쌓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이날 석탑의 중심축인 '심주석(心柱石)'의 세 번째 돌이 놓였다.
지난 16일 오전 전북 익산 금마면 '미륵사지석탑' 보수현장을 찾았다. 거대한 가설 덧집 속에서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1층 기단의 정중앙에 심주석이 놓여지는 순간이었다. 심주석은 탑의 기둥역할을 한다. 사리장엄을 담은 첫 번째 심주석(2톤) 위에 뚜껑 역할을 하는 두 번째 돌(1.4톤)을 올리고, 그 위에 세 번째 심주석이 기중기에 들려 살포시 내려앉는다. 모든 작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극도로 집중한 석공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미륵사지석탑을 해체보수정비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1998년이다. 이후 조사연구와 석탑 해체, 일제강점기에 덧씌운 콘크리트 제거, 사리장엄 발굴, 보존처리 과정이 이어졌다. 지난 2013년부터는 본격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는 석공 스무 명, 연구자 여덟 명이 이 공사에 매달리고 있다. 이날 이곳의 기온은 영상 4도. 문화재 보수현장은 난방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열기가 느껴졌다. 앞으로 심주석 열네 개를 추가하고 탑신의 6층까지 화강암으로 채우면 보수가 끝난다.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실장(57)은 지난 2002년부터 현장을 지휘했다. 그는 "미륵사지석탑은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최고(最古), 최대(最大)이다. 백제의 건축기술은 중국,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미륵사지석탑이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지난 2011년 작고한 불교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가 해준 이야기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황 박사는 지난 2004년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현장에 들러 "생전에 이 탑이 수리되는 모습을 보아 여한이 없다. 어떤 사업보다 중대한 사업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제대로 하자"고 했다.
불교에서 탑은 예불의 대상이다. 탑은 부처의 몸과 같다. 불상이 많지 않았던 고대의 탑들은 지금보다 규모가 크다. 미륵사지석탑은 해체 직전 기단의 폭이 12.5m, 높이는 14.2m나 됐다. 특히 이 탑은 목조건축과 석조건축 기법이 융합된 유일한 사례로서 의미가 남다르다. 기단석은 아랫부분이 굵고 위로 갈수록 얇다. 석재에 홈을 파 끼워 맞추었다. 탑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그 모습이 부드럽다. 목조건축 기법을 석탑에 구현한 것이다. 김 실장은 "당대 목조건축은 남아있지 않다. 목조탑을 연구하려고 해도 목조의 기법이 적용된 이 탑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미륵사지석탑은 백제 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문화유산으로 값지다"고 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3차원 스캔 정밀실측 등을 동원해 백제시대 때 적용된 탑의 건축 구조와 기술 원리를 분석했다. 탑의 설계와 관련한 고대 기록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밝혀낸 정보들을 토대로 숙련된 전통 석공기술을 접목해 보수하고 있다.
공사가 끝나려면 앞으로도 1년 반(2017년 7월 완료 예정)을 기다려야 한다. 탑의 형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1915년 일제가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덧씌운 185톤 분량의 콘크리트는 지난 2004년에 제거했다. 미륵사지석탑 보수 팀은 과거 석재가 쓰러져 내려 6층까지 남아 있는 형태 그대로 석탑을 쌓아올리고, 콘크리트를 떼어낸 자리는 화강암으로 채울 예정이다. 석탑 주변에 남아 있던 부재를 70%까지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미륵사지에서 10km 떨어진 익산 황등면의 화강암을 가져다 쓴다. 보수 후엔 6층을 눌러주는 부재를 하나 더 올릴 예정이어서 탑이 4㎝ 정도 높아질 전망이다.
미륵사 창건 설화에는 백제 무왕과 왕비인 신라의 선화공주가 등장한다. 왕은 왕비와 더불어 사자사(師子寺)에 가는 길에 미륵삼존을 만난다. 사자사는 용화산 중턱에 있는 작은 암자다. 선화공주가 큰 연못에서 현신한 미륵삼존을 보고 왕에게 청해 용화산 아래 금당과 탑,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사는 639년에 창건한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금당 셋을 짓고 그 앞에 각각 탑을 세우는 삼원(三院)식 가람배치를 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찰이 17세기 이전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절터에는 서쪽에 보수중인 '미륵사지석탑(서탑)', 가운데 목탑터와 금당터, 동쪽에 '동탑'이 있다.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시간을 관장하는 부처 '미륵'이 사찰의 이름이 된 이유도 여기 있다. 동탑은 9층으로,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확한 고증 없이 세워 문화재로는 가치가 없다. 서탑과 동탑이 쌍둥이 탑이라거나, 서탑이 9층이라는 주장도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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