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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어느 경비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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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호 사회부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소민호 사회부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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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무했지요. 가당키나 했나요. 이렇게도 세상은 흘러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잖아요. 요새는 이런 일 찾기도 어려운데, 그냥 꾹 눌러 참으며 살자고 다짐을 했거든요. 운동 삼아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도 돌려서 생각했어요.

근데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실제로는 쉽지 않더라고요. 손주 같은 아이들한테 '폴더인사'를 하는데 진땀이 나대요.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느냐고 수천 번 되뇌었죠. 교대하는 김씨하고도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하자고 주문을 외듯 했고요.
그렇게 몇 달이 흐른거 같아요. 그러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생긴 겁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저와 동료들을 보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글쎄 그 새파란 아이들 중 한 명이 글을 써 붙인 겁니다. 대부분이 접해 본 그 글 말이에요. 그걸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더라고요. 정말 뭔가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도 있었고요. 가끔 그런 때 있잖아요. 모호한 상태였다가 퍼뜩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 말이에요. 특히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존중하면 됩니다"라는 대목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곰곰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죠. 몇 분 지나지 않아 반성을 하게 됐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참 욕심을 많이 부리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과욕이라거나 탐욕이라고 할 정도로 소유욕이 강한 사회가 된 것 같아요. 뭐든 내 것으로 만들겠다, 내 몫을 최대한 더 만들겠다, 뭐 이런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거에요. 욕심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내 것만 내세우게 되면 각박해지게 되잖아요. 마치 버스나 전철을 탈 때, 마트에서 장볼 때, 다른 사람 제치고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밀치는 사람은 별 느낌이 없을지 몰라도, 밀쳐지는 사람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게 되는…. 느낌 아시죠. 내 아파트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수준. 내가 관리비 내니까, 그 돈 받는 사람은 나한테 깊은 존경심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믿음. 그래서 우리한테 폴더인사를 시켰겠지요.

그런데 좀더 생각해 보니 젊은 아이들한테서 희망을 보게 된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요. 기성세대들은 그냥 넘겼잖아요. 경비원이 깊숙하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으레 그러려니 했던 거죠.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어요. 이런 변화를 마음에 담아두고서 몇 달 동안 스스로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고쳐야 된다고 봤던 거에요. 그런 생각을 잘 정리해 글을 써 붙였던 겁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이런 아이들이 내 것만을 좇는 기성세대들 사이에 존재한다니. 기특하다는 표현은 좀 부족한 것 같고, 신기할 정도예요. 사회는 또 이렇게 발전해 가는구나, 닳아빠진 기성세대에게 아이들이 이렇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구나,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아이들한테 흔히들 "생각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생각은 나이 먹은 우리네가 더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꼈답니다. 어릴 때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자라는 아이들이지만, 실은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볼 줄 알고 그 고민을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안다는 거죠. 시간이 지나며 논란이 커지니 "시킨 적 없다"고 시치미 뚝 떼던데요, 그런 건 어른들이나 잘 하는 겁니다. 욕심이 지나친 거 같아요. 돈, 자식, 조직에 대한 욕심. 스스로를 미화하려는 욕심. 학생들 교과서마저도 입맛대로 바꾼다고요? 쩝,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이 글은 부산의 모 아파트 경비원을 가정해 순전히 창작한 것입니다.





소민호 사회부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sm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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