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 개척 3년 이상 걸리는 중소 벤처기업 위축 목소리도

[아시아경제 강구귀 기자] '한계기업 정리? 총론에는 동감하지만 각론에서는 글쎄…'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3년 연속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금융권은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거세게 몰아부치면서 당장이라도 매듭이 지어질 것처럼 비치지만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계기업에 대한 판단, 그에 따른 구조조정은 적잖은 진통이 따르는 만큼 흥분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여신만기 문제= 은행들이 당장 우려하는 것은 여신만기 문제다. 만기가 되지 않은 기업에 대해 여신한도를 재설정하고 회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현재는 여신 만기가 되지 않은 기업이 많아 연내 구조조정 대상에 올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의 자금 흐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약정기한까지 두고봐야 한다는 게 은행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만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부실 징후가 다분하다는 이유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의 기업여신은 만기가 1~10년으로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만기가 연장되는 등 여신만기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구조조정이라는 게 속도전으로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은행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구조조정 일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 통상 은행은 구조조정 대상기업 명단을 연초에 정해 1년 단위로 관리해오는데 정부가 '연내 구조조정의 성과를 내라'고 밀어붙이면서 내부 일정이 꼬인 것이다. B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1년 단위로 해오던 구조조정을 몰아서 해치우라는 주문인데 인력이나 시간 모두 무리가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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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효과= 부실기업에 대해 여신한도를 줄이거나 또는 자금회수를 결정하더라도 다른 은행에서 여신이 늘어나는 이른바 '풍선효과'도 예상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는 은행이 구조적으로 민원에 쉽게 노출돼 있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C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어떤 은행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부실기업의 지원을 끊더라도 다른 은행에서 신규대출이 발생하곤 한다"며 "부실에 대한 판단이 은행마다 다른 상황에서 외부 입김이 먹힐 경우 대출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계기업 가능성이 있는 부실기업에서 주로 풍선효과가 발생한다"며 "구조조정 효과를 높이려면 풍선효과부터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 위축= 금융권이 신중론을 제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소·벤처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은행들이 여신심사를 강화하다보면 창업 초기의 중소·벤처기업들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질 우려가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창업 초기 기업들은 판로 개척에 3년 이상 걸리는 만큼 손익분기점 단계를 지날 때까지는 자금 조달을 금융권에 기대야 한다"며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자금 조달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신이 강화되면 대출이 줄어드는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신용보증기금의 여신심사용 기술평가인증서가 발급된 건수는 총 9998건이지만 여신심사 강화로 실제 대출이 이뤄진 경우는 21%(7874건)에 불과했다.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도 2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 현장 간담회에서 "모처럼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모두 한계기업인양 몰아세우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꺾고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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