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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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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양이요, 이름은 철북 - 문학소년의 성장소설

<양철북>이라면 누구나 올 봄에 타계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나찌 시대 독일의 일그러진 역사를 다룬 장편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1980년대 제주도 4.3항쟁을 다룬 장편 서사시 ‘한라산’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후 한참 동안 절필했던 이산하 시인의 자전 성장소설 제목이 하필 <양철북>인 것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 제목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의 양철북은 불의와 잔인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독일 시민들의 의식을 두드리는 영혼의 북소리였다. 그 북소리를 기억하자는 시인의 뜻이 성장소설의 제목이자 고3 문학소년인 주인공의 이름이 되었다.

이산하의 <양철북>은 시인, 소설가 등 문학가가 되고 싶어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진학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물론 이미 그 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도 당연히 읽어보길 권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문학의 길을 접었으나 아직도 가슴 한 켠에 그 꿈을 담고 있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일독을 권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는 ‘문학가’가 되려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가 자세히 나오기 때문이다. 한 때 프로야구를 휩쓸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홈런왕 김봉연 선수가 강조했던 타격 비결이 ‘자세’였듯 무릇 모든 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성이 양 씨, 이름이 철북’인 주인공 ‘철북이’는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맞은 대구의 문학소년 이산하다. 당시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대구 출신 시인 안도현보다 1년 위였는데 둘은 전국의 학생 백일장을 죄다 휩쓰는 라이벌이자 문우였다. 자전 소설인 만큼 이렇게 현존하는 실명의 사람들, 특히 문학인들의 과거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별미다.

방학 동안 문학적 고민을 위해 외할머니가 스님으로 있는 수구암에 간 철북이는 그곳에서 화두를 얻기 위해 수행 차 떠도는 젊은 스님 법운을 만난다. 소설은 무작정 법운을 따라 나선 철북이와 법운의 대화록이자 여행기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 조르바를 항구에서 우연히 만나 갈탄광 사업을 위해 함께 섬으로 떠나는 여정과 많이 닮았다. 둘은 운문사와 수녀원을 거쳐 조계산 불일암의 얼굴 긴 농부(법정스님)를 만난다. 마지막 여정은 오대산 적멸보궁이다. 물기 어린 눈으로 이별하는 법운과 루시아 수녀의 속사연은 미궁이다.

법운에 따르면 성경을 한 줄로 줄이면 ‘다 지나가노니…’이다. 불경을 한 줄로 줄이면 ‘헛되고 헛되도다’다. 둘을 합치면 ‘다 지나가노니 헛되고 헛되도다’다. 수 많은 깨달음을 주는 보석 같은 언어들은 그러나 문학도답게 입심 좀 센 고3 학생과 스님답지 않게 입이 건 청년의 대화라서 속되고, 웃기고, 차지다. 대화 중에 철부기 학생이 읽은 것으로 거론하는 국내외 유명 책들이 어마어마하다. 문학가의 첫째 자세가 광폭 독서임을 명백하게 주장한다.
법운 스님이 철북이에게 이른다. “날개는 남이 달아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몸에서 나온다. 넌 펜으로 힘껏 북을 쳐라. 단, 글을 쓸 때는 항상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쓰고. 네가 네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무대가 대구 인근이라 경상도 사투리가 ‘천지바카리’다. <이산하 지음/양철북/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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