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옛길을 걸으며 짚어보았던 것이다 당신의 없는 발소리 위에 내 발소리를 들여놓아 보며 얼마나 오래 발 소리가 쌓여야 발자국이 되고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쌓여야 조붓한 길이 되는지
그해 겨울 당신이 북쪽으로 떠나고
해마다 눈발이 벼랑 끝에 서서 울었던 것은,
이 길이 벼랑의 감지 못한 눈꺼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안도현의 '문경 옛길'
길은 인간에게 깨달음의 원천이며 공부의 질료였다. 걷는 것이 수행이며 진리는 도(道)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인류가 생겨난 처음에는 길이 없었다. 누군가 어떤 방향으로 첫 발자국을 찍고, 누군가 그 발자국을 믿어 다시 발자국을 찍었을 때, 흔적이 또렷해졌고, 발자국들의 쌓여 바닥이 다져지면서 길이 된다. 길은 앞서 간 사람에 대한 신뢰의 자취이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안전함을 담보하는 기표이다. 길의 상념을 안도현은 어떻게 열어가는가.
발소리 위에 발소리를 얹고 발소리가 쌓여 발자국이 되고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된다는 이 생각. 마음이 쌓여 사박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자취를 만들고 그것이 길이 되었다는 이 생각. 조선시대 여인 이옥봉이 읊었던 '꿈의 영혼(夢魂)'에 나오는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가 떠오른다. 꿈 속에서 워낙 그대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자주 걸어 다녔기에, 꿈의 영혼이 걷는 길에도 자취가 난다면, 문앞에 있는 그 돌길은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거라고, 살짝 과장해보이는 그 애교가 곱고 아름다웠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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