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빼앗긴 우리문화재 '오구라컬렉션'의 전말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경주 금관총 출토 유물 곡옥과 귀걸이, 부산 연산동 출토 철제단갑, 조선시대 용봉문두정투구, 금동팔각당형사리기, 분청사기, 백자, 복식…. 일본에 반출된 수많은 우리문화재들 중 일부다. 이 유물들은 현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한국실에 전시돼 있다. 이 유물 절반 이상이 이른바 '오구라컬렉션'으로 분류된다.
오구라컬렉션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년)가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에서 구입, 경매, 밀거래를 통해 반출해간 유물들이다. 1981년 오구라의 아들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할 당시, 한국문화재 수량은 1030건이었다.
오구라가 어떻게 이처럼 많은 한국문화재를 수집해 갈 수 있었는지, 그 전모를 밝힌 책이 발간됐다. 문화재청 산하기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펴낸 '오구라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사회평론)라는 책이다.
책에는 법학도였던 오구라가 한국에 오게 된 경위와 한국문화재를 모았던 과정이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그가 수집한 주요 유물이 어떻게 반출됐는지에 대한 정황을 소개하고 있다. 오구라는 부친의 회사가 뇌물수수로 문을 닫게 되자 조선으로 옮겨 전기사업을 일으켰다. 전기사업은 그에게 큰 재력을 안겨줬다. 오구라가 조선에 있을 당시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우리 땅에 있는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개인들은 경매나 도굴품의 밀거래를 통해 우리문화재를 사고 팔았다. 이같은 공적 발굴조사와 도굴, 사적인 수집 열기 속에서 오구라 역시 다종다량의 한국문화재를 수집했다. 오다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오구라는 고적조사위원은 아니었지만 경상북도의 평의원으로 이 조사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유물을 입수했다. 경매, 구입 뿐 아니라 도굴꾼과의 밀거래 등 정황으로 볼 때 불법성이 보인다"며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했지만 경성(서울)과 부산에서도 문화재 수집에 열성을 보였다"고 했다.
당시 한국문화재 수집에 혈안이 된 일본인은 오구라 뿐만이 아니었다. 총독부 관료와 은행가, 병원장, 사업가 그리고 교사 등 직종도 다양했다. 일제하 공주고보 교사로 재직하며 공주의 백제문화를 연구하며 송산리 6호분을 처음 확인한 '가루베 지온'이란 인물도 이 중 한 명이다. 학자로서는 업적을 남겼을지 모르지만, 불법으로 유물을 사취한 건 그 역시 매한가지였다. 오 팀장은 "학식있고 돈 있는 자들이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알아봤던 것"이라며 "과거도 그렇지만 일본은 골동품시장이 발달돼 있고 관심있는 이들이 모인 연락회, 감상회, 감평회 등이 활발하다. 교토나 도쿄에서 골동품만 전문으로 하는 아트페어도 상당하다"고 했다.
책에는 오구라컬렉션보존회 위원들과 운영 및 회계 등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몇 종의 오구라컬렉션 목록 외에도 새로운 목록들을 추가적으로 발굴해 비교·정리돼 있다. 가장 오래된 1941년의 '오구라 다케노스케씨 소장품 전관목록'부터 도쿄국립박물관이 이 컬렉션을 기증받고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발간한 '기증 오구라컬렉션 목록'(1982)까지 모두 10여개가 작성돼 있다.
목록 뿐 아니라 당대의 신문기사, 조사보고서, 경매도록 등을 분석하면서 오구라의 유물 수집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부산 연산동 고분군 출토품은 1931년 도굴된 이후, 도굴꾼들에 의해 밀거래됐고 공식적인 발굴조사 후 고적조사보고서가 간행되었던 금관총 유물은 어느 시점에 오구라의 소장품이 됐다. 이러한 매장문화재는 불법부당한 문화재의 거래와 수집을 암시하고 있다.
오구라컬렉션은 고고유물(557건)부터 도자, 회화, 공예, 전적, 복식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다. 이 중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금동관모'를 비롯한 8건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됐고, '견갑형동기', '금동팔각당형사리기' 등 31건은 중요미술품으로 인정됐다. 우리 정부는 1958년 4차 한일회담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이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에도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등 민간에서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거부 의사는 여전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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