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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비전]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하는 '中企 글로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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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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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뜨거웠다. 광우병 파동까지 겹쳤다. 사회 전반에 회오리가 일었다. 중소기업도 혼란에 빠졌다. 기회라는 주장과 위협이라는 주장이 팽팽했다. 그러나 한 가지 소득은 있었다. 중소기업 국제화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FTA 체결, 관세 철폐, 수출 증가라는 경제이론에 충실했다. 중소기업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당시 중소기업 국제화의 대표 사례는 유럽이었다. 그래서 히든챔피언이 소위 말해 떴다.
히든챔피언은 세계시장을 장악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이다. 한국도 이를 따라 하기에 바빴다. 히든챔피언을 쓴 헤르만 지몬에게 고액 강연료도 마다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히든챔피언은 우리에게 맞지 않은 옷이었다.

유럽은 12세기부터 도제제도가 있었다. 마이스터(Meister)에게 수련을 한 후 장인이 되는 제도다. 우리에게도 도제의 흔적은 남아 있다. 미용사, 영화감독, 요리사 등이 그러하다. 수련생이 마이스터가 되면 당시 지역 단위인 영주를 떠나야 했다. 스승의 영업지역을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따리 하나 들고 다른 영주로 이동했다. 이들을 '저니맨(journey man)'이라 한다. 저니맨은 프로 스포츠에서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 영주의 단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정착한 저니맨은 자신의 제품을 이웃 영주에 팔아야 했다. 영주를 국가의 개념으로 보면 저니맨과 제품의 국가 간 이동이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다. 국가(nation) 간(inter) 활동을 의미한다. 이를 고려하면 유럽의 국제화는 태생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도제, 마이스터, 저니맨이 오늘날 히든챔피언을 탄생케 한 원동력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1966년 법적으로 중소기업이 처음으로 이 땅에 등장했다.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시행됐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수직적인 연결을 촉진하는 법이다. 쉽게 말하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쯤 되면 태생적으로 국제화가 불가능하다. 대기업 납품이라는 안정적인 기반을 뒤로하고 국제화를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한 업종의 중소기업 수출이 부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국가 간 이동을 하고 싶어도 바다 건너 일본은 우리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고, 대륙 건너 중국과 교역 자체가 없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국제화라는 개념은 들어갈 틈이 없었다. 히든챔피언이 우리에게 맞지 않은 이유다.

한미 FTA로 시작된 국제화의 관심이 벌써 10년째다. 우리 중소기업에 맞는 개념과 정책이 필요하다. 국제화보다 글로벌화가 시대에 맞는 개념이다. 국제화는 공간의 이동이었다면, 글로벌화는 세계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글로벌화는 국제화보다 광의의 개념이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더 공격적인 성장의 전략이다. 그래서 정책은 체계적이어야 한다.

글로벌화는 수출을 통한 시장진입, 부품의 해외조달, 생산요소의 글로벌 이동을 포함한다. 진입, 조달, 이동이 활발해지면 기업의 국적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생산은 베트남, 판매는 중국, 연구개발(R&D)은 국내에서 이뤄진다. 이게 바로 글로벌 공급 사슬이다.

글로벌화는 보다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지난 10년이 그냥 흘렀다.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부터 고쳐야 한다. 좀 더 과감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과 시행이 빨라야 한다. 정보 수집, 정책 수립, 예산 확보, 지원 시행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글로벌시장은 매우 빠르게 변한다. 지원을 시행할 때쯤이면 글로벌시장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게 바로 정부 지원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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