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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공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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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가 대학 축사에서 왜 "엿됐다"고 했겠는가

[아시아경제 ] 이 세상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죽었다 깨어나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또 절대로 없는 네 가지가 있다. ‘비밀, 공짜, 독불장군, 돈 잃고 속 좋은 사람’이다. 이 중 ‘독불장군 없다’의 속뜻은 ‘혼자 너무 잘난 체 하다가 고립을 자초하지 말라’와 ‘우리끼리 잘 뭉쳐야 기득권 계층에서 튕겨져 탈락하지 않는다’의 두 가지로 갈린다. 전자가 사전적 의미로 널리 쓰이는 반면 후자는 유명 대학 동창회, 특정 직업군의 친목회 등 소위 기득권 층의 사조직 모임 때 건배사로 은밀하게 쓰인다.

20년 전, 모 대기업의 홍보실 직원이었던 필자는 퇴근 후 실세 임원의 사적 호출을 받는 혜택(?)을 입었다. 부여된 임무는 일류 호텔에서 열리는 임원의 대학 동창회 모임 사진을 찍어주는 ‘찍돌이’였다. 놀라운 것은 그 대학이 미국의 대학이었다. 미국 대학 출신들도 동창회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참가자 대부분은 이미 국내 최고 대학 졸업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시종일관 ‘동창들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서로 끈끈하게 잘 지낼 것인지’였다. 국내 명문 대학 동창회도 모자라 외국 유학 동창회까지 기득권의 사수를 위한 장벽은 그렇게나 공고했던 것이다.
‘공부의 배신’은 바로 그들이 공부하고 돌아온 미국의 하버드 등 명문대 중심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귀족사회, 실력사회’의 모순을 파헤쳤다. 미국의 명문대생들은 기득권 층 부모들이 제시한 높은 연봉의 유력한 직업을 성공이라고 스스로 속이는 영혼 없는 천재들이다. 겉으로는 의기양양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불안에 떠는, 그저 목동이 가라는대로 생각없이 몰려가는 순한 양떼들이다. 대학은 그들의 계층 세습을 담보해 주는 ‘장치’로나 전락했다. 때문에 심각한 소득격차, 계층간 이동 봉쇄, 소통의 리더십 부재로 미래가 암담하니 ‘민주사회’로의 개혁을 서두르자는 것이 요지다.

저자는 “우리는 젊은이들이 리더가 되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도록 하고 있다”는 프린스턴 대학 총장의 졸업식 연설은 엉터리라고 지적한다.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은 사회적 선(善)이나 변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세속적 탐욕일 뿐이다. 인문학과 예술을 퇴출시키는 대학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대학은 그런 가짜 리더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로 권력을 장악한 자들에게 의문을 제시하는 ‘시민’을 양성하라고 주문한다.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뉴욕의 예술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 엿됐습니다”라 한 것이 화제가 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하버드’를 ‘서울대’로 바꾸면 우리의 현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거기다 더해 우리는 미국 대학의 후광을 등에 업은 ‘유학파 엘리트’들까지 진을 치고 있다. 더더욱 ‘기득권 세습 장치로서의 대학’의 폐해를 개혁하기 힘든 이유다. 우리의 ‘학벌사회’를 대변하는 미국 유학파의 민낯은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돌베개)에서 제대로 다뤘다. ‘공부의 배신’ 역시 이제야 터져나온 이슈가 아니다. 지난해 학벌로는 뒤지지 않을 김두식, 김대식 형제가 펴낸 ‘공부논쟁’(창비사)이 벌써 우리의 영혼 없는 천재들과 구조적 계층 세습 장치의 풍토에 직격탄을 날렸다. (공부의 배신 /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 김선희 옮김 / 다른 / 1만 6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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