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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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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왕 김일선수 '이마' 미국 레슬러가 진짜 사갔을까

[아시아경제 ]
우리옛이야기백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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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왕 고(故) 김일 선수와 ‘동백 아가씨’의 국민가수 이미자 씨가 죽으면 머리와 성대를 미국에서 비싼 값에 사가 다시 쓴다는 말을 진지하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 베이비부머의 끝자락으로 태어난 필자의 어린 시절이 그랬었다.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아동 잡지는 언감생심 존재를 몰랐다. TV는 고사하고 라디오마저 귀했다.

어른들은 사철 밭으로 바다로 일하러 나갔고 유치원은 없었다. 장난감이래야 나무조각으로 모양을 흉내 낸 권총이나 굴렁쇠가 전부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옛이야기’는 훌륭한 조기교육이자 즐거운 놀이였다. 이야기꾼은 주로 특별히 말재주가 좋아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하는 동네 할머니나 몇 살 위 초등학생들이었다.
할머니들의 메뉴는 주로 심청전, 춘향전,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등이었다. 형, 누나들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구월산 호랑이나 백 년 묵은 금강산 구미호였다. 어제 듣다 멈춘 이야기의 뒤가 궁금해 하교시간에 맞춰 동구밖에 나가 기다리기도 했다. 물론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 역시 무슨 책을 읽고 알아서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의 재탕이거나 임기응변으로 지어낸 창작이었다. 말 그대로 전래와 구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우리 옛이야기였는데 산업화를 거치며 생긴 서구문명 선호 탓인지 언제부턴가 홀대 받는다는 느낌이 완연하다. 단군신화가 비현실적이라면 그리스로마신화도 비현실적이다. 별주부전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모두 상상의 세계다. 그런데도 마치 그리스로마신화에는 대단한 ‘철학과 사상’이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일연의 ‘삼국유사’ 판매부수 차이만큼의 인식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중국, 일본, 몽골, 프랑스, 영국까지 2천년 역사 동안 강대국들의 셀 수 없는 침략을 버티어 온 우리다. 지략과 지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들을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철학과 사상이 녹아있는 곳이 바로 우리 옛이야기들 아니겠는가.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를 읽어보면 충분히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절구 이야기’의 사또의 지혜는 영락없는 솔로몬의 재판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덕목이 ‘까치의 보은’에 들어있다. ‘원숭이가 준 보물’에는 지성이면 감천의 눈시울 적시는 감동이 있다. “백 개째의 사람 간을 막 먹으려는, 꼬리 아홉 달린 ‘금강산 구미호’가 어젯밤 우리 집에 찾아왔길래 밥 먹여 보냈지”라는 저자의 넉살에는 낄낄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책이다. 이야기 하나 당 평균 5쪽 내외, 길어봐야 10쪽이라 속도가 빠르다. 인심 좋은 감나무 집 할아버지께서 자분자분 말씀하시는 듯 구어체가 친근하다. 이야기 하나를 읽으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손에서 놓기 어렵다. 읽는 재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故 김일 선수의 이마는 지금 미국 어느 레슬러의 이마가 돼 박치기를 뽐내고 있을까?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1. 2 개정판 / 서정오 / 현암사 / 각 권 1만 8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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