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두근거림, 그의 詩는 팔할이 사람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 특집 낸 문예지 '시작' 들여다보기
[아시아경제 허진석 ]
문학평론가 윤재웅(54)이 "나는 미당(未堂)의 제자"라고 하면 그의 말을 받아 적는 기자는 즐겨 '미당의 제자를 자처하는'이라는 관형어를 골라 쓴다. 대학과 문단 안팎에서 가르침을 받은 후학이 적지 않을 터. 어찌 궂은 소리가 없겠는가. "도둑놈. 그분에게 글을 배운 자가 어찌 저뿐이라더냐!" '나 또한 제자'라며 손 들고 나올 일을 험한 소리로 갈음하려 하니 싸구려 양푼 구르는 소리가 난다. 미당 제자 노릇하기 쉽지 않다. 기독교의 성도를 자처하는 자는 저마다 십자가를 지고서야 메시아를 따를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감히 미당의 제자, 미당 시의 성도이고자 하는 자는 한사코 미당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한국 현대문학, 나아가 현대사의 질곡을 따라야 한다. 지하교회에서 예배하는 성도처럼 은밀히 숨 쉬고자 하는 자는 '친일' 내지 '권력에의 굴종'이라는 멍에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윤재웅은 이름을 남길진저!
계간 문예지 '시작'이 미당 서정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집을 꾸몄다. 2015년 봄호. 제14권 1호 통권 52호이다. 미당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윤재웅을 비롯하여 최현식ㆍ김춘식ㆍ김익균 등 문학평론가와 박형준ㆍ천양희ㆍ장석남ㆍ문태준ㆍ김언ㆍ이영광 등 시인이 글을 섞었다. 미당을 몰라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학동이 아닌 이상 문사들의 글 잔치에 독서의 즐거움 이상을 채워줄 성찬은 없다. 9쪽에서 시작해서 146쪽에서 끝나는 긴 특집이 지루한 반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편집의 잘못이 아니다. 용빼는 재주 있던가. 우리에게 미당이라는 존재가 그러하거늘. 썼거나 그렸거나 고금의 '자화상'을 통틀어 '애비는 종'이었으며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미당의 노래만 한 것이 있던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우는 것이다. 이 봄, 저 흐드러진 봄 꽃동산은 미당의 독백이거니.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문 열어라 꽃아./문 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일부)
한국인이 우리말로 시를 쓴 이래 미당만 한 시인이 없다고 한다. 시인 이근배(75)는 탄식한다. "한국 현대시에서 한 분을 뽑으라면 누구도 미당을 뽑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당은 일부 오점이 지나치게 부각돼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가 빠지는 등 홀대를 받고 있다." 윤재웅의 응어리는 예서 멀지 않다. "한때 '시의 정부(政府)'라 상찬하던 제자는 흉참한 배반의 고별사를 썼고, 일각에선 그의 정체성에 '시인' 대신 '친일'의 주홍글씨를 새겨 넣기도 했다." 반면에, 이런 언설도 부유(浮游)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조각. 꽤 험하다. "'애를 낳았으면 애를 볼 일이지 그 치마를 들춰 그 피를 살펴 볼 일이 아니다'하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서정주의 시를 그 애라 볼라쳐도 그 치마 속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위인이라 방해받음이 크다. 뉘 탓이랴? 다 제 탓인 것이다." 글쓴이는 1975년 5월 21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미당의 회갑 기사 가운데 '미당의 시는 사상의 괴뢰가 아니고 가슴 몸 전체로 쓰는 시'라는 대목에 격분한다.
시작 봄호는 미당의 업적을 찬찬히 짚고자 하였기에 그 과오를 더듬어 죄를 씌우는 시도는 거의 없다. 허물을 허물로 받아들이고 그가 시로써 가 닿은 세계의 황홀을 맛뵌다. 윤재웅은 머리말 격인 '바람의 연대기'에서 짚었다. "그가 생전에 '에누리'도 '우수리'도 없이 평가받길 원했던 태도는 모름지기 모든 평가의 근간이다. 그러려면 서정주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서정주를 읽는 일이 우선 아닌가. 폄훼도 상찬도 뒤로 물리고 일단 '읽는 일'". 어찌 쉬우랴. 미당의 친일과 굴종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귄터 그라스의 나치 복무와 같은 등위에 있지 않다. 2006년 8월11일 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실린 인터뷰는 파문을 불렀으나 그라스의 지위를 바꾸지 못했다. 그라스는 비판적 글쓰기와 진보적 행위로써 '몸'으로 말했다. 미당은 그런 것 없다. 1950년 12월3일, 그는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공덕동의 자택 '청서당'에서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을 쓴다.
'괜, 찬, 타……/괜, 찬, 타……/괜, 찬, 타……/수북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괜, 찬, 타, ……괜, 찬, 타, ……괜, 찬, 타,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일부)
시인 박형준(49)은 문학병에 빠져 있던 스무 살 남짓 청년 시절 이 시구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시인의 눈물은 미당의 시를 건너 체험의 동굴 속에서 길어온 정서이다. 무릇 시 읽기란 그러하다. 시작 봄호는 '미당 시 1000편'을 갈음하여 "열광하는 청춘부터 '대교약졸(大巧若拙)'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미당은 인생사의 풍부한 경험을 '민족어의 진생맥(眞生脈)'인 수려한 모국어로 남겼다. 두근거리는 가슴, 미친 방황의 노래, 통곡의 절규, 창피하고 부끄러운 친일, 죽음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다시 돌아 나오는 자기 긍정의 힘, 무형의 넋들과의 접촉, 민족문화와 역사의 탐구, 세계 여행 경험 등과 같은 압도적으로 풍성한 제재가 68년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고 했다. 봄날의 독서. 시력(詩歷) 70년에 이르는 미당 시의 어느 시대를, 혹은 한 주제만을 공들여 읽는 호사는 어떤가. 최현식(48)은 독서의 반란을 권하며 "독자의 몫은 결정된 의미나 낯익은 평가만을 복습, 암기하는 소극적 수용에 있지 않다"고 부추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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