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논설위원]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와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이 두 권의 책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장이다. 정확히는 민주주의 정부와 유권자들에 대한 고발장이다. 두 책은 분석대상이 미국과 한국으로 서로 다르고, 주제도 전자는 선거행태에 대해, 후자는 그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정부의 국민과의 괴리라는 문제에 대한 것으로 거리가 있지만 둘 다 민주주의의 현실과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부의 개조(開祖)랄 수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 그리고 그 미국으로부터 민주정체를 받아들이고 모방 학습해 온 한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은 결국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요청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고민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어리석은...’의 저자인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 리처드 솅크먼이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도대체 왜 부시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부시에 대한 비판서가 결코 아니다. “부시와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미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부시에 대한 성토가 아니라 유권자에 대한 비판서다. 그는 “엉망이 돼버린 우리의 상황을 부시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태도”라면서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지도자 한 명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며 우리도 그 일들에 관여했다”고 말한다.

결국 솅크먼이 이 책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다. 그는 2004년에 부시를 뽑았을 때도 2008년에 오바마를 뽑았을 때도 중요한 것은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인을 뽑을 때 유권자들은 마치 복음주의 교회의 신도들처럼 ‘느낌’에 따라 후보를 선택한다고 지적한다.


“빌 클린턴을 생각하면 그가 방송 오락쇼에 출연해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조지 W. 부시를 생각하면 그가 전형적인 남부 백인 남자들 여럿과 바비큐 그릴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하는 투표에서 더 이상 쟁점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유권자의 느낌일 뿐이다.”
반면 수많은 미국인들은 직면한 중요한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는 기본적 사실에조차 심각할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이 저자의 개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정치인들의 멍청한 말과 행동을 화제에 올리면서 국민으로서 우리의 우월감을 드러내지만 말고 유권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국민의 요구에 정부와 정치권이 번번이 실망을 안기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한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원로인 저자 이정전 교수는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가 왜 제대로 국민의 의사를 구현하지 못하는지를 다각적으로 살핀다.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수렴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짚어보고, 정부와 정치권이 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원인을 따지고 있는 이 책은 특히 이번 주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저자의 말마따나 “정부의 역할, 국가의 역할에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이 두 권의 책이 전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현실은 암울하고 답답해 보인다. 민주주의가 과연 가장 선진적인 정치체제인가, 아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에겐 과연 민주주의를 할 만한 역량이 있는가, 라는 의문을 다시금 갖게 한다. 두 책은 일찍이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직접 체험하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질적인 결정은 사실 다수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며 대중들은 그럼에도 자신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뿐인 무력한 존재들”이라고 지적했던 월터 리프먼의 ‘여론’에서의 경고를 약 100년이 지난 뒤에 일종의 묵시록처럼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저자들의 의도는 민주주의에 대해 또 한 번 낙담케 하려는 있는 것일까. 이미 적잖게 기나긴 ‘민주주의 무용론’에 또 하나의 목록을 얹으려는 데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서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우울한 비관론에 빠지지 않게 해 준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토크빌의 말이 갖는 이중성처럼, 두 저자는 결국 국민의 수준이 성숙하고 높아질 때 그에 맞는 정부와 민주주의가 나온다는 것을 설파하려 한다.


여기서 저자들의 내놓는 처방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국민들에게 공중의식을 갖게 하기 위한 노력, 즉 ‘공민학(公民學)’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솅크먼의 주장이 새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시장과 달리 정치 영역에서는 유권자들이 개인적 이익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따라서 행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시민으로서의 의무감과 투표 동기 간에 이런 상관관계가 있다는 이정전 교수의 얘기는 그보다는 좀 더 실증적인 차원의 얘기인 듯하지만 이 역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민주주의는 그것이 ‘발전된 정체(正體)’인 만큼 ‘발전된 주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성숙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듯(에리히 프롬) 민주주의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운동가인 프란시스 무어 라페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에서 얘기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단지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학습하고 진화시켜야 할 ‘기술’이다. ‘민주주의 기술’역시 독서나 요리, 축구의 드리블처럼 의도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또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청, 논쟁, 중재, 협상, 성찰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기술을 우리는 열심히 배우고 습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기술을 배우는 데는 그 기술의 실용적인 측면과 함께 왜 민주주의 제도가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다양한 ‘정체(正體) 실험’을 거쳐 대체로 다수가 동의하는 체제로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한 숙고가 조금은 필요한 듯하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 역사가 투키티데스가 민주주의의 어리석음에 대한 우려를 하면서도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을 빌어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른 국가들이 모방해야 할 전범이며 그런 점에서 아테네는 하나의 도시로서 헬라(그리스)의 학교”라고 했던 그 자부심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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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리처드 솅크먼 지음, 강순이 옮김/ 인물과사상사/1만4000원>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이정전 지음/반비/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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