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자가해체 8. 작품 설치 전경

자가해체 8. 작품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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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려나간 기타, 살이 빠진 색색의 우산들, 찌그러진 의자와 스티로폼, 쓰다 버린 분홍빛 연탄재….


재개발 지역의 폐품들이 줄지어 띠를 이룬 채 동심원을 만들고 있다.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과 북아현동, 상도동 밤골마을, 녹번동 등 재개발 예정지 네 곳을 세 달간 돌며 모아온 물건들이다. 현재 백사마을만 재개발 계획이 유보되고, 나머지 지역은 철거가 진행 중이다. 모두 가난한 이들이 생활터전을 이뤘던 달동네들이다. 미술관으로 들어온 달동네 물건들이 '재개발 문제'라는 해묵은 이슈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마을의 조성, 개발로 인한 파괴 그리고 이주. 이를 상징하는 버려진 물건들이 모여 하나의 설치작품이 됐다.

이번 전시는 멕시코 작가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47)가 국내 최초로 갖는 개인전이다. '자가해체8: 신병'을 제목으로 붙인 작가는 일상적인 폐품을 재활용해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에 전혀 다른 모습과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신작을 보여주려 했다. 부제를 강신 체험 현상의 하나인 '신병(神病)'으로 붙인 것도 이와 같은 변신,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작가는 한국의 객원 큐레이터, 예술가, 미술학도들과 현장을 찾아 폐품을 수집하고, 리서치하고, 전시 기획과 구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작품을 설치했다. 물건 500여개 가운데는 슬레이트 지붕, 벽돌, 장판, 마루 등과 같은 폐자재는 물론 신발, 의자, 조명, 자전거, 액자, 이불과 같은 생활용품들도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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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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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도룡뇽이라 불리는 아홀로틀(axolotl).

멕시코 도룡뇽이라 불리는 아홀로틀(axol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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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스비예가스의 이 같은 작업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7년부터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주변 사물들을 활용하고 다양한 기술을 혼합해 즉흥적이고 불완전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설치작업은 사회,정치,경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형되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를 질문하게 한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선보였던 '자가구축' 시리즈는 작가가 어린 시절 멕시코시티 남쪽 화산암 지역에 성장하면서 불모지를 개척하고 정착했던 과정, 주변에서 구한 재료와 임시변통으로 집을 짓고 가족 및 이웃 사이의 협동과 연대를 통해 마을을 만들어 나갔던 경험을 근간으로 한다. 2012년부터는 '자가구축'의 동시적 이면으로서 '자가해체'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현대화된 도시생활 가운데 전통과 옛 문화를 부순 개발 이면을 비춘다. 이번 전시는 로스앤젤레스, 멕시코시티, 파리, 런던 등에서 문학, 철학, 음악과 같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며 진행해온 '자가해체' 연작의 여덟 번째 작업이다.

전시장에는 청계천에서 애완용으로 팔고 있는 멕시코 도룡뇽 '아홀로틀(Axolotl)'을 옮겨와 키우고 있다. 이번 전시의 객원큐레이터로 참여한 배은아(여·41) 기획자는 "아홀로틀은 멕시코시티 운하에서 멸종위기에 처해있던 생물이다. 올림픽을 진행하면서 운하에 요트경기장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살고 있는 모습이 발견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며 "작가는 성충으로 변태하지 못하고 어린 모습 그대로 성장하는, 재생능력이 뛰어난 이 생물을 은유적 매개로 삼아 우주와 사물의 영속적인 변형, 변신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26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전관. 02-733-8945.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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