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뒷談]한국금융시스템 M·B의 고민
두 모델의 선택보단 상호공존 바람직
자본시장 중심 땐 금융리스크 커지고, 은행중시 모델은 혁신가능성 낮아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미스터마켓(Mr. market)이냐, 뱅커(Banker)냐?'
경제 학계의 단골 논쟁 중 하나는 은행과 자본 시장의 상대적 우월성을 따지는 것이다. 은행 중심 모델은 신중하게 금융 중개 기능을 해주지만 '공익성'에 발묶여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반면 자본 시장 중심 모델은 큰 자금을 모으기 쉽지만 리스크가 높거나 거품이 깨질 우려가 있다. 은행과 자본 시장 가운데 어느 쪽이 경제발전에 더 기여하느냐를 따지는 백가쟁명식 논쟁은 지금도 한창이다. 이는 학문적 흥밋거리기도 하지만 둘 중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이냐에 따라 그 나라 경제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보다 은행 중심 금융 시장에 가까운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4년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비금융법인 기업(민간기업과 공기업ㆍ이하 기업)의 직접금융(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41조원에서 11조원으로 4분의 1이나 감소했다. 특히 채권발행(해외채권 제외)을 통한 자금조달은 2013년 24조9000억원에서 2014년 2조3000억원으로 줄었다. 지분증권과 투자펀드를 통한 자금조달은 2013년 16조원에서 지난해 8조80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반면 은행 대출 등 간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은 2013년 중 40조원에서 2014년 중 67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단기차입금(21조8000억원→25조9000억원)과 장기차입금(18조2000억원→41조7000억원)이 나란히 증가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은행 금융이 경제 성장의 가교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은행 중심 모델과 지본 시장 모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봐도 금융시스템의 중심이 은행에 있는지, 시장에 있는지는 역사적 배경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극명히 구분되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 독일이다. 2012년 기준 미국의 기업과 가계는 총 저축의 54%를 시장성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 은행에 예금한 돈의 비중은 19%에 불과하다. 일본은 전체 자산의 53%만 은행예금에 넣어두고 시장성 자산 보유비중은 28%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1811년 뉴욕주에서 시행한 유한책임제가 시장 중심 금융시스템의 텃밭을 이뤘다. 반면 독일은 중소기업이 강해 끈끈한 관계금융을 중시하는 금융시스템이 은행 중심 금융구조를 이뤘다. 이는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일본은 전쟁 당시 독재형태로 구성된 정권이 재벌이 소유한 금융사를 통해서 자본시장보다 더 통제하기 쉬운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갔다"고 설명했다.
90년대를 지나면서 많은 국가들이 은행중심에서 시장중심으로 금융시스템을 바꾸어가는 기류가 감지된다. 비톨스가 2001년 발표한 '독일과 일본의 금융시스템자유화의 정치경제학' 논문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는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이 시장 중심 시스템보다 장기자금을 더 잘 공급해 성장에 기여했다. 반면 90년대 들어 은행 중심 시스템이었던 일본과 독일이 자유화와 부실자산 누적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투자은행들을 중심으로 한 금융의 발전은 금융이 기업을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동력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인식을 만들기도 했다. 각국 정부가 금융을 옥죄는 규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은행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해 정부 간섭을 받았지만 시장은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언제나 '선(善)'은 아니라는 비판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은행중심과 시장중심을 떠나 전체적인 금융발전 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담론도 제기된다. 예컨대 은행 비중이 높더라도 시장이 보완기능을 잘 해 금융활동을 뒷받침하는 법률이나 감독체계가 잘 갖춰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은행과 시장을 '대립'보다는 '상호공존' 관계를 의미한다. 은행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심사 기능에 뛰어나다. 시장은 조달비용을 줄여 준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은 "잘알려져 있는 대기업 입장에선 자본시장 중심이 유리한 반면,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입장에선 관계금융을 할 수 있는 은행중심 모델이 더 유리할 수 있다"면서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어느부분이 정답이라는 것은 없고 양쪽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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