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나는 일종의, 모자댁(宅,오타쿠)이다. 어린 시절부터 특이한 모자를 보면 환장했고, 내가 사는 곳엔 늘 모자가 넘쳤다. 나의 시간들은 어떤 모자와의 인연으로 이뤄져 있고, 많은 모자들은 시절을 증언하며, 모자 연대기만 보아도 내 삶이 굴비처럼 꿰어진다.


이런 편집증이 내 삶의 어느 부분에 있었던 트라우마나 매혹적 기억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듯 하다. 아마도 '피'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 또한 수많은 모자들을 평생 거느리고 사시는(요즘 가장 애지중지하시는 모자는 참전용사 배지가 잔뜩 달린 군모 스타일의 이상한 모자다) 분이며, 형님 또한 자는 시간을 빼고는 모자(형님의 최근 애완모는 개량한복에 어울리는 검정색 개량 도리우찌다)를 벗지 않으실 만큼 중독자이다.

내게는, 정확하게 세보지는 않았지만(그러고보니 이걸 왜 안해봤는지 모르겠다) 오십개는 넘는 모자들이 모여 내 머리를 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앞쪽으로 긴 챙이 있는 모자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졌지만, 갈수록 다른 형태의 모자들이 끼어든다. 뺑 돌아 둥그런 챙을 가지는 페도라나 버킷햇(벙거지라고도 한다)이 슬금슬금 늘어 이젠 그것만으로 한 장르를 이뤘다.


또 도리우찌, 헌팅캡이라 부르는 앞쪽이 두더지 이마처럼 잘쏙하게 빠진 모자들도 많이 생겼다. 도리우찌란 말은 조타(鳥打)를 일본말로 읽은 것인데, 새잡이를 말한다. 사냥꾼용 모자란 얘기다. 사냥꾼들이 이런 모자를 쓰는 까닭은, 두드러진 챙이 없어 숲속에서 나뭇가지 따위의 장애물에 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사냥꾼들이 아니라, 앞이마에 풀이 좀 없는 빛나리를 가리는 용도로 더 많이 쓰였기에, 머리가 비교적 멀쩡한 내가 쓰고 다녀도 내가 요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도리우찌보다는 조금 깊이가 있는 베레모라는 모자도 있다. 베레(beret)는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 있는 바스크라는 지역에서 쓰던 농민들의 모자라고 한다. 챙이 없고 울로 되어 부드러우며 둥글납작한 게 특징이었다. 이것을 군인들이 쓰면서 이제는 군모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베레모는 그의 이미지와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군인들이 왜 이런 모자를 쓰느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전쟁 때 방탄헬멧 속에 이것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헬멧에서 전달되는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도 하고 헬멧 속의 먼지 따위를 막아주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 또한 변형된 모양의 튀는 베레모를 불쑥 쓰고 모임에 나타나 좌중을 놀라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한때는 또 빵모자나 귀를 가리는 군밤장수 모자를 선호하기도 했다. 물론 겨울 한때의 취향이지만, 원색이나 흰색과 검은색과 같은 강렬한 빵모자로 자신의 머리를 절반이상 도배하는 일은 묘한 자기은폐의 쾌감을 주었다. 빵모자는 비니(beanie)모자라고도 하는데, 콩알이 들어있는 콩껍질의 느낌과 머리가 들어있는 모자의 느낌이 비슷해서 그렇게 지어진 게 아닌가 추측을 해본다. 이 모자는 두피의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오래 쓰면 탈모가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즐길 건 아닌 것 같다. 이와 비슷하지만 귀쪽에 날개가 내려오는 모자는 군밤장수들이 애용한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 쓰고나면 모양새가 늘 형편없지만 그래도 소박하고 정겨우며 춥고 가난한 인생에 핍진하는 진실성같은 게 있다. 귀가 시릴만큼 겨울 들판이나 거리에 오래 서있어야 하는 날, 귀모자처럼 그립고 반가운 게 없지 않던가.


모자는 그냥 머리에 덮어쓰는 물건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옛사람들은 모자에 벼슬과 권위를 거의 모두 담았다. 관(冠)은 어른이 되는 것과 공직에 앉는 것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모자의 크기와 종류는 그대로 신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내가 신라의 큰 무덤에서 발견된 곡옥이 줄줄이 매달린 금관을 쓰고 어떤 번개모임에 나갔다고 생각해보라. 코스프레라는 것이 요즘은 일상화되어 경천동지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나를 예사롭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모자는 강렬한 자기 표현 욕망을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힘이 있다. 얼굴을 성형하거나 머리를 조림(造林)하는 번거로움에 비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얼굴 주변의 분위기를 바꿔준다. 모자에는 마음이 덮씌워져 있으며 계절이 있으며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이 있으며 유행이 있으며 욕망이 있으며 언어로 표현된 것 이상의 고백이나 아름다운 생각이 숨어있다. 모자는 햇살을 가리기도 하고 비를 긋는데 쓰이기도 한다.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나 자신의 공개하고 싶지 않은 상태(머리를 감지 않았거나 하는 따위를 포함해서)를 제대로 가려준다. 모자에는 여행이 있으며 자유가 있으며 예술적 상념도 있고 멋과 상상이 어른거리며 직업적 고집이나 센스가 응집되어 있기도 하다. 모자에는 계급도 있고 권위도 있으며 또한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생겨나는 귀엽고 엉뚱한 맛도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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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사로 출근할 때도 대개 모자를 쓰고 간다. 편집국에서 아니 회사를 통틀어 이렇게 착모 상태로 업무에 임하는 자는 나밖에 없어 보인다. 누군가 삐딱하게 본다면 저 자는 무슨 배짱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하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감수하고 머리에 힘을 준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내가 모자 쓰기를 지독하게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도 그럴 수 있었는가. 물론 그때는 눈치 보느라 자제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자제를 놔버린 걸 보니 확실히 내가 간덩이가 부은 것이 틀림없다. j신문사 시절에 어느 선배가 늘 쓰고 다니던 도리우찌가 워낙 멋있게 보였기에 그 환상이 남아있는 까닭도 있으리라. 그런데 그 선배는 그냥 전방의 탈모현상을 가리려는 뜻이 강했다. 하지만 훤칠한 키와 육중한 몸매에 흰 얼굴을 한 분이 도리우찌를 쓰고 편집국에 등장하는 모습은, 마치 중요한 야구경기에서 4번타자가 타석에 서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그 잔상이 지금의 나의 어쭙잖은 모자 출근을 종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겐 이미 처치 곤란할 만큼 많은 모자가 있지만, 여전히 모자가게 앞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못한다. 생을 살아오면서 발견하지 못한 진귀한 모자가 있지나 않을까, 혹은 나를 200% 업그레이드(그런 일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할 수 있는 굉장한 모자가 있지나 않을까 신중하고 신중하게 모자들 위를 거닐며 하나하나 살핀다. 내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자가 벌써 무수히 많기에 내 눈에 들려면 여간 훌륭해선 안되겠지만, 사실 사소한 유혹에도 곧잘 넘어가고 만다. 단지 새롭다는 이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는 이유, 어쩐지 끌린다는 이유. 미확인 사유들로 다시 모자 갤러리에 일점을 추가하는 일이 많다. 요즘 내 눈에 들어온 모자는 저것이다. 저 친구를 겨울이 거의 다 지나서 발견하는 바람에 제대로 쓸 기회가 없어서 분했다. 푹해진 봄날 간이 귀마개가 달린 저 모자를 쓰고 잠깐 방안을 거닐어 보는 건 그 때문이다.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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