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쏙 빠진 이슬람… 서양식 교육의 구멍

[아시아경제 ]

세상을 바꾼 이슬람

세상을 바꾼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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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사의 범주를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세계사로 인식해왔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유럽이 구축한 기독교 중심의 세계사 교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이다. 전세계 57개 국, 15억 명의 인구가 1,400 년을 지탱해온 이슬람 역사에 너무 인색해서다. 심지어 무슬림은 대부분 아랍에 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들의 70%는 아시아에 거주하며,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87%가 무슬림이다.


서기 6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아시스 도시 메카에서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은 무함메드가 이슬람교를 완성한 후 632년 에루살렘에서 죽었고, 에루살렘은 이슬람의 3대 성지가 됐다. 이때의 그들은 미개인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기원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의 후예였다. 이슬람은 732년 파리 교외에서 유럽의 지배자 카를 마르텔과 맞붙었다. 만약 여기서 이겼더라면 유럽 전체가 그때 벌써 이슬람화되었을지도 모른다. 750년 압바스 제국을 이룬 이슬람은 유럽의 노른자위 영토를 대부분 차지했다. 탈라스 평원에서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세계의 라이벌 당나라를 물리치고 제지술을 얻어가 바그다드에 지식혁명을 일으켰다. 징기즈칸에게 망할 때까지 이후 500 년간 압바스는 세계를 호령했다.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예언자로 추종하며 영토를 위협하는 이슬람은 유럽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었다. 때문에 13세기 로마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코란)’이라는 악의적 개념어로 이슬람을 왜곡했지만 실제의 이슬람은 ‘공존공생’이 키워드다. 융화와 공동체주의가 세력을 넓히는 힘이다.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에루살렘을 지배했지만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를 보호했다. 15세기까지 800 년 동안 이슬람 세력권이었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는 유대인, 기독교가 공존하며 문화의 꽃을 피워 르네상스의 지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기독교가 접수하면서 무슬림과 유대인은 쫒겨났고 안달루시아는 퇴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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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살렘 탈환이 핑계였던 십자군 전쟁의 속내는 로마 교황의 권력확대와 콘스탄티노플의 재화약탈이 목적이었다. 이슬람과 유대는 물론 기독교 형제국까지 약탈하는 ‘추악한 전쟁’이었다. 이때 돈과 무기를 댔던 지중해 도시국가들이 무역로를 독점해 큰돈을 벌었다. 에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재탈환한 아랍 장군 살라딘은 기독교도들을 모두 살려줬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이슬람은 다시 세계의 강자로 우뚝 섰다. 천년 동안 세계의 주류였던 이슬람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점령으로 꺾이기 시작해 1차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식민 약탈 대상으로 역전됐다. 와중에 서구의 힘으로 팔레스타인에 건국된 이스라엘이 무슬림과의 공존 대신 탄압을 선택했다. 이슬람과 기독교 1200년 앙숙의 역사이자 탈레반, IS(이슬람국가)같은 극단적 증오의 저항조직이 탄생한 배경이다. 한국인 학자가 공평(?)하게 양쪽을 바라본 ‘세상을 바꾼 이슬람’과 IS의 배경을 조명한 ‘이슬람 불사조’(글항아리)를 같이 읽으면 이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을 바꾼 이슬람 / 이희수 / 다른출판 / 1만 3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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