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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용인)=이영규 기자] "우리 자생식물을 활용해 유전자원을 지키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합니다."
세계는 지금 식물종 유전자 확보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은 200여년 전부터 이 같은 전쟁을 통해 유전과학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백종의 자생식물 유전자원마저 외국으로 반출돼 신 품종으로 개량돼 역수입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전자원 관리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이처럼 국립식물원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생식물을 자식처럼 40년째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 비봉산 자락 20여만평의 드넓은 동산에 다양한 자생식물 안식처를 만든 한택식물원 이택주(73)원장.
이 원장은 한택식물원의 이름없는 들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하나 모두가 자신의 '인생'이자 '분신'이라고 말한다.
한택식물원에는 고사리와 잡초를 제외하고 수목류 1200여종과 자생화 1200종 등 24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 외국종을 합치면 9000여종이 넘는다. 남ㆍ북한을 합쳐 자생하는 식물이 3700여종인 점을 생각할 때 한택식물원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한택식물원은 여느 식물원과 다르다. 이 곳은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씨를 뿌리고, 자생식물들에게 서식지를 내주고 있다. '동양최대' 식물원이지만 '고향 뒷동산'에 온 듯한 정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원장은 꿈이 있다. 한택식물원을 세계 최고의 식물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인 식물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면적보다는 얼마나 많은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또 얼마나 과학적인 연구기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제게 남은 과제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식물원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원장은 40대 초반만해도 식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전국 곳곳의 건설현장을 누비던 그는 1978년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용인으로 내려와 축산농의 꿈을 키웠다. 1982년까지 현재 식물원 자리인 선산을 초지로 일궈 한우와 젖소를 키웠지만 당시 정부의 쇠고기 수입으로 소값이 폭락하면서 대부분의 축산농가와 마찬가지로 빚만 떠안은 채 좌절의 나날을 보냈다.
이 원장은 자포자기 상태로 '빚이라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소를 키우던 초지를 밀고, 여기에 조경용 나무와 자생식물 몇 가지를 심기 시작했다.
"나중엔 이곳 저곳에서 구해다 심은 자생식물이 100여종에 달했는데 특별히 돌봐주지 않아도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의 힘'에 매료가 되더라고요."
꽃과 나무심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이 원장은 1985년께 우리 고유의 야생화로 알고 있던 봉숭아나 민들레가 외국에서 들여온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은 뒤 우리 고유식물 가꾸기에 본격 뛰어들었다. 자생식물에 매료된 이 원장은 '돈이 되는' 조경수 재배까지 팽개친 채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설악산·지리산·한라산 등 유명산은 말할 것도 없고 울릉도·백령도·진도 등 전국의 섬 구석구석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원장은 20여년의 '발품'을 팔아 설악산 향로봉에서만 자라는 '난쟁이붓꽃', 울릉도와 동해안에서 자라는 '두메부추', 한라산의 1500m 이상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고산술패랭이', 주왕산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둥근잎 꿩의비름', 대암산에서 자라는 '비로용담'과 '섬노루귀' '광릉요강' '산솜방망이' 등 이름조차 생소한 자생식물들을 한택식물원에 옮겨다 심었다.
이렇게 수집한 자생식물 중 이 원장이 가장 아끼는 것은 설악산에 헬기장과 산장을 만들면서 마구 잘려나가 멸종위기에 놓인 '설악눈주목', 설악산 권금성의 '솜다리(일명 에델바이스)', 울릉도 마구잡이 개발로 멸종되다시피한 '고추냉이' 등이다.
이 원장은 무분별한 개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더욱 정성껏 보존하고 있다. 이 같은 이 원장의 정성과 고집ㆍ노력으로 조성된 한택식물원은 2003년에 일반에 공개됐다.
이 원장은 식물원을 하면서 아쉬움도 많다.
"외국에서는 국빈방문 때 '퍼스트 레이디'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국립식물원입니다. 그만큼 식물원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잣대죠."
그러나 이 원장이 바라보는 우리의 종자보호 대책과 자생식물 육성책은 요원하다.
"2∼3년 전부터 정부가 우리 야생화초를 거리 화단에 심기 시작했으나 그 양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아직도 외국 화초 일색이죠. 유럽국가와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종자전쟁에 대비해 자국의 식물 보존과 연구에 박차를 가해 왔고 다른 나라의 식물에도 눈을 돌려 종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정부와 관련기관도 자생식물에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이 원장이 한택식물원을 더 키워야 하는 이유다.
최근 이 원장을 찾아 온 한 원로 식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 소 농사짓다 망하길 잘했네. 대학교수도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을 자네가 해냈어. 이제 우리도 어엿한 식물원을 가지게 됐고 조상님이 지켜주신 자생식물을 이어갈 수 있으니 그나마 면목이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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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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