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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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호박은 언제나 제 옆에 있었어요. 한 해가 지나면 그 다음해 또 다른 호박이 그 자리를 채웠죠. 무수히 쏟아지는 씨앗과 생명력. 호박에서 어머니 젖가슴 같은 따뜻함을 느꼈고, '생성'의 근원을 깨달았죠."


도예가 정충미(여·63·사진) 작가에게 '호박'이란 소재는 남달랐다. 호박은 어릴 적 추억를 회상하게 하면서도, 도시 생활의 고된 일상에서 '위안'을 주는 어머니 품과 같았다. 호박은 작가에게 생명과 포용, 위로였다.

정 작가가 20년 동안 빚어온 호박 작품들이 한데 모아 오는 12일 선을 보인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재작년 첫 번째 뉴욕 전시에선 자연스러움이 강조된 무정형의 도자기 사발 작품을 전시했다. 이번에는 오랜 기간 꾸준히 작업해 온 호박 150여개가 설치된다. 어느 집 마당 호박 덩굴을 그대로 뉴욕 전시장으로 옮겨놓은 듯 재연될 설치 작품은 애호박과 늙은 호박 등 다양한 크기 호박들이 검고, 노랗고, 흰 색감들로 구성돼 전시장 바닥에 깔리거나 천장에 매달릴 예정이다.


정 작가는 "색이 다른 여러 개의 호박에는 흑인, 백인, 황인종 등 인종문제 또는 종교문제로 야기되는 갈등 많은 사회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호박'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얻고, 여기에 '평화'의 의미를 더해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런 과정들은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정충미 '호박 시리즈' 설치 작품 모습

정충미 '호박 시리즈' 설치 작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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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도예를 시작하고, 예순이 넘는 시간동안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데 까지는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작가의 에너지는 더 샘솟았다. '여자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집안 분위기는 여학생에게 입학장학금을 준다는 대학을 기여코 들어가게 했으며, 결혼 후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시기는 작가의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을 더 깊게 했다.


호박이 귀중한 작업 소재로 다가온 때는 그의 나이 마흔 즈음 당뇨 합병증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구순의 할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다닐 적에 도예를 전공하고, 미술교사로도 일했었지만 당시엔 가족의 병수발을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 작가는 "하루 12번 상을 차리는 일이 허다했다. 손등이 터지고 딱정이 생기고, 감기는 달고 살았다"며 "그때 서울 중곡동에서 살았는데 한창 건축붐으로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창밖으로 아차산도 옛날처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호박이 늘 옆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호박은 희생적이며 세련되지 않은 삶을 살았던 푸근한 친엄마로 다가왔다. 힘든 상황에서 나를 치유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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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인 흙을 재료로, '어머니'를 상징하는 호박을 빚는 정 작가는 도예를 향한 열정 또한 뜨겁다. 그는 "주로 여름에 작업을 즐겨한다. 뜨거운 열기를 온 몸으로 받으며, 고통을 즐기며 작업했던 것 같다"며 "고통은 아마 나 자신이 도예를 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동안 국내와 일본 그리고 뉴욕 등에서 전시를 연 바 있다. 이번 전시는 8번째 개인전이다. 지난 2001년 말 경기도 가평에 '현대도예문화원'을 설립해 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4월 1일까지. 뉴욕 첼시 에이블파인아트뉴욕 갤러리.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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