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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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새로 합류하게 된 모임이 있다. 대덕연구단지 정부출연연구소 정책모임이다. 몇몇 출연연 정책실장들이 주축이 되어 과학기술 관련 정책에 관해 고민을 나누는 비공식적 세미나로 시작한 모임이다.


새해 첫 모임은 대전시립미술관의 <더브레인전> 관람이었다. 몇 년 전부터 '과학도시 대전'을 알린다는 취지로 이 미술관에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에 관한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에는 뇌과학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마침 새로 회원이 되신 분이 미술관 학예실장이어서 그의 주선으로 모임 후 전시작가 중 한 분을 모셔 강연을 듣게 됐다. 학예실장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요새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말이 하도 남발되어 자기는 그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가만큼은 '과학예술'을 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개받은 작가는 조소 전공자인데, 직육면체나 삼각형 등의 3차원 형태를 반복해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다소 큰 규모의 설치미술 작품을 주로 만든다. 어느 날 서점에서 대학 물리학 교재를 들추다가 자신의 작품과 흡사한 도판을 보고 그 원리를 공부하게 됐다. 물리학과 수학 강의를 듣기도 했고, 그쪽 교수들과 몇 달씩 세미나를 같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위 '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원리에 따라 반복 패턴을 재생하는 식으로 작업하게 됐다. 그의 작품에 바탕이 된 스케치를 보면 계산식과 도형 등이 잔뜩 그려져 있어, 밑그림이라기보다 마치 수학노트 같다.


강연 마지막에 작가가 과학과 예술의 공통점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얘기가 내게는 올해의 화두가 됐다. 그가 말한 공통점이란 '정직하다'는 것이다. 변칙은 있되 반칙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원리나 규칙을 세우고 작품을 만들다보면 원하는 대로 안 될 경우가 있다. 이때 '예술적 변형'이니 '무의식의 발로'니 하면서 규칙을 버리면 쉽게 멋진 모양을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자신에게 반칙이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처음 세운 규칙대로 하다가 정 안 되면 어떤 부분에 13% 변형을 도입하든지 해서 작가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규칙 변화에 따라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변칙인데, 변칙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반칙은 변명해야 한다.

변칙과 반칙의 구분은 국가 연구개발비 집행에도 시사점이 크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공공 연구비를 쓰는 연구자들의 어깨는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항목과 관련 규정으로 얽힌 연구비 집행규칙을 일일이 따르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때론 실수나 무지로, 때론 특수한 연구상황으로 규정을 어기게 된다. 문제는 규칙에 따르지 않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니면 변명해야 하는지다.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규칙이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잘 반영해야 할 근거가 된다. 반대로 변명과 해명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은 규칙의 집행에 이미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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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설명이냐 변명이냐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어 구별하기가 어렵다. 둘을 잘 구별하게 해주는 간단한 방법은 복기(復碁)다. 즉 비슷한 조건에 처했을 때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학예술'을 추구해온 작가가 얘기한 것처럼 '무의식의 발로'로 규칙을 어겼다면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갔을 때 같은 행동을 취하지 못하겠지만, 규칙을 바꿀 때 그 변칙을 어딘가 적어놓았다면 똑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가 연구에 필요해서 연구비 규정을 어겼다면 동일한 상황이 발생할 때 같은 이유로 또 어길 것이다. 이런 규정은 연구자들에게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것이므로 조정돼야 한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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