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다른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에는 꺼진 모니터가 많다. 1988년 설치된 이 작품에 탑처럼 쌓인 브라운관 모니터 1003개 중 300여개가 꺼졌다. 모니터 중 약 30%가 먹통인 다다익선은 더 이상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이 되지 못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에서 중고 브라운관을 조달해 오는 광복절 전에 고장난 브라운관을 교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바꿔 끼울 중고 브라운관도 수명이 유한하다. 또 기존 브라운관도 머지않아 망가지게 된다. 외국에도 교체할 중고 브라운관이 떨어지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브라운관 대신 LCD로 교체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처음 탄생한 모습과 달리 LCD로 설치된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작품인가. 백남준이 만든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작품으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 하나.
"모니터들이 자꾸 고장나고 부품이 없어 그러니 한국에서 삼성이든 LG든 맞는 게 있으면 그걸로 쓰고 없으면 껍데기를 벗겨내 새 것으로 끼워달라. 그러면 작가는 그것을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보겠다. 콜렉터 제위께서는 물심양면 협조를 바란다."
이 문제는 예술의 본질과 관련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예술작품 역시 시간의 '풍화작용'에 노출된다. 원작의 DNA를 유지하면서 보수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작품 전체가 새로운 소재로 대체됐을 경우 예술작품에서 보존되는 원작의 DNA는 무엇인가.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