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마을] 인천 청학동 ‘마을과 이웃’
[아시아경제 박혜숙 기자]
“도시개발 겪으며 이웃의 소중함 깨달아”
“공동체학교와 마을축제 뿌리내린 인천의 대표적 마을공동체”
도시개발사업으로 위협받은 생활권과 주거권을 찾자며 뭉친 사람들이 16년 째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시작한 마을운동이 공동체학교를 만들었고 마을축제를 개발했으며 주민자치마을, 문화마을, 평생학습마을로 변모시켰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 없던 아이들이 공부방을 찾아 모여들고 어른들은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살아가는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다세대 주택들이 빽빽한 골목길에선 때때로 시가 낭송되고 클랙식 음악이며 풍물 공연도 펼쳐진다. 이 곳에선 내 아이, 옆집 아이 가리지 않고 살피는 이웃의 정겨움이 있고, 어떻게 하면 각박한 도시의 마을이 경쟁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의미있는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에서도 손꼽히는 마을운동의 역사가 있는 곳, 청학동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의 모습이다.
◆도시개발사업 항의에서 시작된 마을만들기= 청학동마을공동체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0월 청학동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과도한 개발부담금에 반대하며 주민대책위를 결성한 것이 그 씨앗이 됐다. 대책위 위원장은 지금의 ‘마을과 이웃’ 대표인 윤종만(55)씨가 맡았다.
사업지구는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공동주택이 밀집한 곳으로 당시 15평의 연립주택과 빌라의 가격은 2500만원선. 하지만 감보율 적용으로 주민들은 1500만원의 개발부담금을 내야 할 처지였다. 주거권과 재산권을 위협받은 주민들은 똘똘 뭉쳐 1년 2개월여를 싸운 끝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개발부담금을 줄이는 성과를 얻어냈다. 49억원의 개발잉여금도 확보해 주민이 부담해야 할 청산금도 감면할 수 있었다.
투쟁 과정에서 눈길을 끈 것은 주민들의 독특한 항의(?)방식이었다. 인천시청 앞 광장에 모인 주민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택견 판을 벌였다. 이마에 빨간 띠를 매고 ‘이크!, 에크!’를 외치며 과도한 개발부담금의 부당성을 알렸고, 가두시위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관(官)에 몰려가 집단시위를 하거나 몸싸움이 아닌 적법한 절차를 밟으며 토지구획정리법에 보장된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이같은 청학동 주민들의 활동은 전국에서 모범적인 주민운동으로 평가받아 인천시 시사에 기록되기도 했다.
부당감보율 철회 운동이 끝나기 3개월를 앞두고 마을엔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철도청(현 코레일)이 수인선 건설사업과 관련해 청학 구간(연수~송도)을 고가 및 지상으로 건설한다는 실시설계안을 발표한 것이다. 소음과 분진 등 환경피해를 우려한 주민들은 수인선 지하화를 요구하며 또다시 한 데 힘을 모으게됐고 4년6개월의 항의시위를 통해 마침내 뜻을 관철시켰다.
주민들은 이렇듯 마을의 굵직한 현안과 맞딱드리면서 내가 아닌 이웃을 돌아보게 됐고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아지면 못해낼 게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만 공동체의 힘을 보여줄 게 아니라 이를 생활속에서 꾸준히 이어가자는 인식을 같이하게 됐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것이 청학동 마을공동체의 터전이 된 ‘나눔의 교실’이다.
윤 대표는 “대책위 활동이 끝나면서 주민들이 많을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관(官)을 상대로 주민들이 싸워 이길 수 있겠냐며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스스로의 힘을 믿게 됐다”며 “대책위는 해산됐지만 앞장서 일했던 집행부가 주축이 돼 마을공동체 사업을 계속 이어가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나눔의 교실이 그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품은 ‘마을공동체학교’= 나눔의 교실은 2001년 1월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확보한 자투리 땅(체비지)에 세워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방과 후 혼자 방치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을공동체 집행부의 의견이 주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실이다. 건물을 짓지 않으면 자신들의 개발부담금을 더 적게 낼 수 있었는데도 주민들은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다.
나눔의 교실에 필요한 냉장고, 컴퓨터, 책 등 집기와 물품들은 모두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는 독서실 집기를 사줬고, 폐지와 고물을 수집해 생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공부방에 보태라며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놨다. 건물이 들어선 땅이며 내부 집기들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마련했으니 나눔의 교실에 쏟은 주민들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3층 54평 건물의 나눔의 교실에선 저소득층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돌봐 줄 보호자가 없어 일단 책을 갖다 놓고 아이들을 오게 했던 것이 그 규모가 늘어났고, 마침 마을로 이사온 현직 교사의 도움을 받아 3개월간 예비학교 과정을 거쳐 2003년 9월 ‘청학동 마을공동체학교’로 정식 개교를 했다. 당시 57명의 아동과 12명의 자원활동가가 함께 했다.
마을공동체학교의 소문이 퍼지면서 2004년 6월 연수구청으로부터 ‘청학동 방과후교실’로 지정받아 현재 아동 40여명을 돌보고 있다. 상근 보육교사가 채용됐고 자원활동가도 20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국어·수학과 한자교육은 물론 특기적성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탈춤, 바이올린, 플롯, 클라리넷 등을 배우고 있다. 결과물은 매년 학습발표회를 통해 선보인다. 몇 년전 부터는 장소를 마을에서 연수구청 대강당으로 옮겨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방과후 학교는 담임제로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다. 보육교사가 각 반별로 나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저소득층이나 한부모 가정 자녀들이 많아 특히 상담활동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어린반’ 담임교사 임원영(39)씨는 “처음에는 경계심이 많았던 아이들이 상담을 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고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가족얘기도 한다”며 “4년째 돌봐온 한 아이의 경우 어머니또한 저와 상담을 할만큼 편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교사는 저소득층 대상은 아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는 아이들에 대해 안타까움도 전했다. “지자체의 재정 지원을 받다보니 규정에 맞게 아이들을 받고 인원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더라도 형편은 안좋고 돌봐 줄 보호자도 없는 아이들이 많죠.”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축제…느티나무와 함께하는 마을 이야기= 마을에는 수령 533년이 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매년 10월이면 이 느티나무 아래서 마을축제가 펼쳐진다. 건너마을 물푸렛골 향나무 보호수 앞에서 출발한 마을학교 어린이 풍물패가 길놀이를 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아이들은 “느티나무 할아버지 생일잔치에 국수 드시러 오세요”라고 외치며 골목길을 누비고, 그 행렬을 따라 어른들은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축제기간 마을 주민들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마을을 주제로 한 글짓기와 사생대회, OX퀴즈 한마당에 참여하고 가족과 함께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의 놀이를 즐긴다.
축제의 백미는 전통혼례 재현이다. 축제 1주일 전부터 느티나무 주변에 전통혼례를 알리는 청사초롱이 매달리면 사람들은 올해는 누가 그 주인공이 될 지 궁금해한다.
그동안 신혼부부에서부터 혼인 25주년을 맞은 부부의 은혼식, 미처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50대 부부까지 여러 쌍이 마을 이웃들의 축복속에 예식을 치렀다.
외부인들도 전통혼례를 보러 올 정도 청학동의 상징적인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느티나무 축제가 올해 7년 째 이어질 수 있는 데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주최자가 돼 행사에 참여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윤 대표는 “마을 어린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름을 걸고 축제를 준비한다. 어린이는 1000원, 어른은 2000원을 내서 축제 비용을 마련하는데 작년에는 2058명이 참여했다”면서 “행사 리플렛에 올라가있는 각자의 이름을 보면서 축제를 만드는 일원이라는 생각에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청학동 마을공동체는 ‘문화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골목길 시낭송회, 클래식 음악회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대표적 동아리인 풍물단과 합창단이 마을에 활기와 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합창단은 인천 최초의 마을단위 남녀혼성팀으로 정기공연도 갖고 있으며 풍물단 역시 지역 행사에 불려다닐만큼 실력을 뽐내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미래, 아이들에게서 찾다= 16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청학동 마을공동체는 인천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마을공동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곤 한다. 작년해만도 600여명의 마을활동가, 공무원, 사회복지관 관계자 등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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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에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생긴 것도 청학동 마을공동체처럼 지역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마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마을공동체는 어떻게 설계돼야 할까.
윤 대표는 “고령화며 실업문제도 이젠 마을 안에서 연구하고 논의해나가야 한다”며 “마을공동체의 근원이 내 가족과 이웃을 살피는 것에 있듯 이런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것은 곧 그 마을의 미래를 보는 것이죠. 마을학교에서 공부하고 인성을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와 처지가 비슷했던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마을의 자원활동가로 일한다면 그 자체가 성과이며 마을공동체도 이들에 의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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