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이중과세 방지 규정 활용해 유령회사 만들어 과세 피해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한국과 네덜란드가 맺은 조세조약이 조세회피 논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주로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해 이익을 본 해외자본이 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8일 서울행정ㆍ고등법원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CJㆍ현대 등에 투자한 외국계회사가 세금관련 행정소송에서 한ㆍ네 조세조약을 근거로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 조약을 활용해 네덜란드를 중간회사로 삼아 과세를 피한 뒤 조세회피처로 수익을 몰아주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정부와 네덜란드 정부는 '국가간 소득에 대한 조세 이중과세 회피와 탈세방지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 조세조약은 한국과 네덜란드에 회사가 동시에 세금을 내는 일을 막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악용되고 있다. 조세회피처에 있는 회사들이 네덜란드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 수익을 내면 세금을 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회사는 '이중과세방지' 조항을 활용해 한국에서 "네덜란드에다 세금을 내니 세금 물리지 말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다시 "조세회피처가 원래 수익을 내는 회사다"고 말한다. 네덜란드를 통해 자금의 성격이 바꾸고 결국엔 조세회피처가 수익을 인식하게 해 세금을 피하는 셈이다.

이 논리는 CJㆍ현대 등 국내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한 기업들이 활용했다. CJCGV에 투자한 회사는 배당소득과 주식 양도 소득에 대한 세금을 아끼려고 이 논리를 썼다.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CVC아시아는 네덜란드에 아시아시네마홀딩스의 주식을 샀다. 이 회사는 다시 한국의 CJCGV주식을 사고 배당, 양도로 소득을 냈다. 하지만 CJCGV는 2010년과 2013년 두번에 걸쳐 각각 62억원, 27억원의 세금부과를 취소하라고 세무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해 8월 법원은 "네덜란드 법인의 직원 급여, 임차료 등이 지급되지 않았고, 회사 존속기간 동안 네덜란드 정부에 법인세를 납부한 적이 없다"고 판단해 CVC아시아회사가 페이퍼컴퍼니임을 인정했다. 또 "네덜란드 법인 설립과 같은 방식은 조세회피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한-네 조세조약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4억원 가량의 세금징수는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대에 투자한 외국회사도 비슷한 경우다. 네덜란드의 케이프 '포춘 비브이'사는 세율이 낮은 홍콩에 있는 허치슨사가 설립했다. 네덜란드 법인이 역시 현대엘레베이터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양도차익이 생겼고 이를 거래하는 현대증권과 HSBC(홍콩 상하이 은행)는 241억원대 세금부과를 취소해달라고 세무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이를 기각했다. 이유는 역시 "네덜란드의 법인은 실체가 부족하고 실제 수익은 홍콩 법인에 귀속됐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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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소송이 진행된 곳은 의류브랜드 행텐의 관계사다. 브랜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네덜란드 소재 법인은 한국에서 팔리는 '행텐'브랜드 상품권 사용료로 의류매출의 2.1%를 받는 계약을 했다. 1심은 지난해 10월 이를 기각했다. 역시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회사가 실질 수익을 낸다는 이유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조세조약을 맺은 나라를 통해 자금의 성격을 세탁하고 세금 회피를 하려는 시도가 많다"면서 "론스타 사건으로 해외자본이 벨기에에에 조세조약을 활용해 '도관회사'를 만드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네덜란드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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