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은 3분기 실적을 묻는 질문에 "허허"하는 웃음만 지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은 "나와봐야 알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유일하게 선방한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도 삼성그룹 전반의 침체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실적과 관련한 질문에는 입을 꼭 다물었다.
밖에서도 너도나도 삼성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삼성보다 더 걱정하고 더 호들갑을 떤다. 그 사이 '갤럭시 신화'라는 찬사도 순식간에 '갤럭시 쇼크'라는 우려 또는 조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은 삼성이다.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위기를 대비하며 긴장감으로 무장했던 삼성에는 다른 기업과는 다른 특유의 위기 돌파 DNA가 숨어 있다. 위기를 한계 돌파의 기회로 삼았던 것은 삼성의 주특기다.
이 같은 위기 극복의 원동력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 십년 동안 삼성에서 위기 돌파 DNA를 체화해 온 사장들은 누구보다도 결연한 의지로 찬바람을 맞으며 매일같이 새벽출근을 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현재 삼성이 처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삼성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찬이슬이 맺힌다는 뜻으로 절기상 한로인 이날 찬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삼성 사장들을 보며 오히려 삼성의 희망을 봤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삼았던 삼성의 모습을 기대한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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