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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시진핑 열전]아베는 왜 그토록 개헌을 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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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격동 한국외교의 Key-man 아베 & 시진핑]패전국 굴레 벗고 욱일승천 강국 재건 야심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 일본의 패전기념일(우리의 광복절)인 지난달 15일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 이 자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전쟁 피해국들에 대한 사죄의 뜻이나 앞으로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맹세가 빠진 추도사를 낭독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반성의 메시지를 넣지 않은 것이다. 패전일에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마저도 추도사에서만큼은 전쟁 피해 국가에 대한 반성의 뜻을 언급했지만 아베 총리는 달랐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1일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일본은 집단 자위권에 대해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초과하기 때문에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헌법을 해석해 왔다. 하지만 이날 각의 결정을 통해 일본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에도 전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해석 개헌(헌법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은 주변국은 물론 많은 일본 국민의 반발을 촉발시켰다.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이 밖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해 국가안전보장회의설치법과 특정비밀보호법 등 안보 관련 법 등을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써가며 통과시켰다. 뿐만 아니라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세웠던 무기수출 3원칙을 파기했으며, 아베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원칙마저 깨버렸다.

◆전후체제에서 벗어나려는 日= 아베 총리는 2006년 '전후 레짐(regime, 체제 또는 질서)의 탈각(脫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총리 관저의 주인이 됐다. 패전 후 만들어진 기존 질서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꼭 밟아야 할 수순으로 그는 헌법 개헌을 내걸고 있다.

일본 보수파는 그동안 '현행 일본 헌법이 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이들이 주장하는 헌법 제정과정에 따르면 더글라스 맥아더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연합군 총사령부(GHQ)에 헌법초안 만들도록 해 일본 정부에 건냈고 일본 정부는 영어로 된 헌법을 일본어로 번역만 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원래 일본 헌법 제정과정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종전 후 일본 정부가 마련한 헌법이 전쟁 전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GHQ에 헌법 초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는 말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보수파는 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니 새롭게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미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보수파 사이에서 나온다. 일본은 1951년 미국과 불평등조약인 미일안보조약을 맺었는데, 미국은 일본 영토 어디에든, 원하는 기간 동안, 원하는 만큼의 병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더욱이 미국이 원하지 않으면 일본을 방위하지 않아도 되는 등 미일안보조약은 다수의 불평등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통해 불평등한 부분을 대폭 개선한 현재의 미일안보관계의 기본틀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미일안보조약 역시 수평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보수파들의 주장이다. 보다 수평적인 미일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 자위권 행사도 보수파에 의해 추진돼 왔다. 1960년 개정된 미일안보조약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함께 나서기로 약속돼 있다. 다만 그 범위는 일본 시정권 지역(입법ㆍ사법ㆍ행정권을 행사하는 신탁통치지역)에서 공격을 받거나 상대방을 공격할 때로 한정된다. 당시 미국은 일본 시정권이 아닌 태평양을 범위로 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은 헌법을 이유로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 해석 개헌을 통해 1960년 기시가 이뤄낸 미일안보조약의 약한 고리를 메웠다. 미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 근처가 아니더라도 일본은 미국을 돕기 위해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만 일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미국을 보호하는 형태의 수평적인 관계로의 탈바꿈을 모색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하는 것은 외할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단자위권 등의 복잡한 방식이 아니라 평화헌법 자체를 개정함으로써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첫 총리 재임 기간인 2007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 등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올해에도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4년 후부터는 투표 연령을 18세로 조정하기로 했다. 집요하게 헌법 개정을 위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아베 총리가 소속한 자민당은 2012년 중의원 선거와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루는 공명당이 헌법 개정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데다 일본의 상원 격인 참의원이 개헌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상황은 더 보수화 되는 분위기다. 공명당이 이번 집단자위권 해석 개헌 과정에 찬성했고, 공명당 외에 일본유신회 등으로도 충분히 중의원 개헌 정족수는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참의원 선거(3년마다 전체 의석의 절반 만큼 선거가 치러짐)에서 자민당이 압승했기 때문에 다음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개헌발의 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에 달린 운명= 첫 총리 재임시절,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쫓기듯 총리 관저를 떠났던 아베 총리는 금융정책(양적완화), 재정지출, 성장전략을 표방하는 '아베노믹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총리 관저에 다시 돌아왔다.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에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추진해 물가상승률이 2%에 도달하도록 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시장의 우려에도 '윤전기로 엔화를 찍어내는 전략'은 곧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일본 경제를 괴롭혀왔던 엔고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환율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닛케이 지수도 2배 가까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들어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올해 일본 경제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6.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적인 마이너스 성장 이유는 지난해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함에 따라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1분기에 소비와 투자가 집중되다 보니 2분기 성적이 나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장은 과거 소비세율 인상 시기(3%에서 5%로 인상)에도 실질 GDP 감소 폭은 -3.5%에 그쳤던 것에 비해 하락폭이 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건강해진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2분기 수출은 전분기에 비해 0.4% 감소했다. 환율을 인하하면 수출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성패 여부는 곧 바로 아베 총리의 리더십 문제로 직결된다. 더욱이 경제적 요인이 헌법 개정 논란과 같은 정치 이슈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본 내에서 '아베의 독주'에 반발하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야당의 목소리 역시 커졌다. 해석개헌이 있은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당 성향의 후보는 집단자위권 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로 선거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다면 아베 총리를 반대하는 여론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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