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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우리는 시장경제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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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주장,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장하성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고 조언한다.

장하성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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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한국 사회에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화두가 된 불평등 문제를 꼬집은 피케티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글로벌 자본세와 최고 80%에 이르는 누진세 도입을 제시한다.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한, 소득은 최상위층에게 지속적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세기에 걸쳐 미국과 유럽 20여개국의 각종 데이터들을 분석한 결과라는 점이 그의 주장에 공신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않다. 피케티의 해법이 과격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벌 저격수'로, 또 '경제민주화운동가'로 유명한 장하성(61) 고려대 경영대 교수 역시 피케티의 이론은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내세운 불평등의 전제조건인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상황' 자체가 한국에서는 성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19세기부터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에 비해 신흥 시장국가들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40년에 지나지 않는 등 각 나라의 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이 다른 탓도 크다. 장 교수는 오히려 소득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세로 정부 수입을 늘려서 재분배하는 정책보다는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나 임금정책이 더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한국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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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선진국들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는 제목 그대로 한국적 불평등 상황에 집중한다. 2010년부터 3년여의 집필 기간 동안 장 교수는 국내외의 방대한 문헌과 자료들을 수집, 분석해가며 원고지 3000매 분량의 대작을 완성시켰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경제 위기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의 비판과 대안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수 우파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고, 진보 좌파는 결과적으로 우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고용·임금·분배가 없는 '3무(無) 성장'"을 겪어야 했다.

장 교수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내린 진단은 많은 이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식을 거부한다. "한국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음식 값, 목욕탕 요금, 여관 숙박료, 심지어 다방 커피 값까지 모두 정부가 결정했던 계획경제 시대를 거쳐 비로소 시장경제로 전환된 시점이 1995년의 일이다. 이후 20여년 동안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자유화, 민영화, 개방화 등의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됐지만 이는 선진국들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과는 그 배경도, 과정도 다르게 진행됐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결과, 경제권력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재벌로 이동한 것이 대표적인 폐해다. 이 같은 재벌 권력을 규제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러면서도 모든 부작용의 원인은 다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또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려면 공정한 경쟁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마저도 우리에게는 요원한 일이란 지적이다.

여기저기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자본주의를 버리거나, 아니면 고쳐 쓰거나. 장 교수는 우리 현실에 맞는 '자본주의 고쳐쓰기'의 밑그림으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제시한다. 언뜻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제시한 대안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기업들이 투자 계획도 없이 내부유보금을 쌓아놓는 것을 막기 위해 '초과 내부유보세'를 도입하고,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소득공제는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상위 1% 소득 계층에 대한 누진세율은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집단소송제, 징벌적 배상제 등을 도입해 불공정거래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법인세는 더욱 세분화해 누진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들의 소유구조 개선 및 경영행태 개선은 자본주의의 정의를 위해 필수 요소다.
그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민주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투표'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이 속한 계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급 투표'와 '(집권 정당의 국정운영 성과나 정당의 이념을 인지하고 있는) 기억 투표'를 한다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질 희망은 있다."

(한국 자본주의 /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만8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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