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기고]피 묻은 '어느 옷'의 절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세월호 참사는 뒤로 하고 '유병언'에만 모든 언론이 매달리는 것 같다. 신문도, TV 채널도 그 보도로 가득하다. 국민적 관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읽고 보면서도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못 믿기는 정부의 발표도 마찬가지다. 어느 면에서 정부의 의도는 이해도 간다. 번번이 국익이나 안보라는 것을 들고 나오곤 했다.
그렇다 해도 언론은 그래서는 안 된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자리 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고 재기를 위해 온 나라가 몸부림 칠 때, 혹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이라고 조롱도 했다.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비아냥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모두 경험하고 있듯이 우리는 화려하게 일어섰다. 군사정권도 물러났고, 민주적인 선거도 숱하게 치렀다.
곳곳이 정화되는 듯한 착각도 할만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는 그렇게 볼만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숱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바른 소리를 하다 목숨을 잃거나 잡혀가 두들겨 맞은 인사들, 그리고 언론인들도 있었다.

1988년 8월6일, 온 나라를 깜짝 놀라게 한 언론인에 대한 칼부림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출근 길, 한 신문사 사회부장의 허벅지를 생선회칼로 34㎝나 찢어놓은 사건이었다. 마침 그해 9월,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므로 세계의 시선이 이 사건에 집중되었다. 테러의 발단은 월간중앙(현 시사 월간 WIN)에 실린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해가는 이 나라에 오랜 군사문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고발한 글이었다.

미궁을 헤매던 사건은 아파트 경비원이 적어둔 차량번호가 단서가 되어 범인이 잡혔다. 정보사령부의 장성들까지 포함된 현역 군인들이 범인이었다.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군인이 기자를 테러했으니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칼럼에 불만이었던 일부 군인에 의한 계획된 언론인 테러였다. 다섯 차례나 그 기자의 집 부근을 답사했고, 테러 전날은 종일 아파트 단지에서 망을 보았다.

테러 당일 새벽 미명에 수상한 차량 한 대가 기자의 집 건너편에 서있었다. 이를 목격한 아파트 경비원이 차량번호를 일지에 적어둔 게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주요 신문의 1면을 메웠고, TV뉴스의 톱기사였다. 영국의 BBC, 미국의 CNN 등을 비롯한 외신들도 카메라를 들이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지금도 20꼭지가 넘는 기사가 올려져있다.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 나라는 세계가 놀랄만큼 발전했으나 군사문화는 아직도 흔적이 남은듯 하고, '바른 소리'도 제 자리를 못잡은 듯하다. 테러 당시 입고 있던 기자의 그 옷이 그의 집에 보관 돼있다. 허벅지가 도륙질 당할 때 함께 찢기며 피범벅이 된 그 옷은, "나는 역사"라며 지금도 그날의 처참함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절규한다.

우리의 언론이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제 구실은 하고 있느냐고, 제발 바른 언론이 되라고.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정신 차려야 할 때라고.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25일만에 사의…윤 대통령 재가할 듯 [포토] 12년만에 서울 버스파업 "웰컴 백 준호!"…손흥민, 태국전서 외친 말…역시 인성갑

    #국내이슈

  • "애플, 5월초 아이패드 신제품 선보인다…18개월 만" 디즈니-플로리다 ‘게이언급금지법’ 소송 일단락 '아일 비 미싱 유' 부른 미국 래퍼, 초대형 성범죄 스캔들 '발칵'

    #해외이슈

  • 올봄 최악 황사 덮쳤다…주말까지 마스크 필수 [이미지 다이어리]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푸바오, 일주일 후 中 간다…에버랜드, 배웅시간 만들어

    #포토PICK

  • 첨단사양 빼곡…벤츠 SUV 눈길 끄는 이유 기아, 생성형AI 탑재 준중형 세단 K4 세계 첫 공개 벤츠 G바겐 전기차 올해 나온다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국가 신뢰도 높이는 선진국채클럽 ‘WGBI’ [뉴스속 용어]코코아 t당 1만 달러 넘자 '초코플레이션' 비상 [뉴스속 기업]트럼프가 만든 SNS ‘트루스 소셜’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