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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심조불산 호보연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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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를 마치고 나오던 성철스님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뒤따라오던 스님들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엉거주춤들 선 채로 스님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은 아직 쌀쌀하여 옷 속으로 소소리바람이 파고드는데 스님은 말을 잊은 듯 한동안 그냥 서 있었다. 곁에 섰던 스님 하나가 가만히 물었다. "스님, 해주시고 싶은 가르침이 계시온지요?" 성철스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뒷줄에 있던 몇몇이 털썩 주저앉을 때 쯤 해서, 스님은 버럭 소리를 지르듯 무슨 말인가를 뱉었다.

심조-불산하면 호보-연자 하나니!
모두들 처음 듣는 경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곁에서 누군가가 내용을 풀어주었다.

心操 不散 하면
마음을 꽉 붙잡아 흩어지지 않게 하면
虎步 然自 하니니
호랑이가 걸어와도 나는 태연하나니

좌중은 감탄했다. 이 말이야 말로 부처가 그토록 강조하던 조심의 경(經)이 아닌가. 누군가가 이런 말을 붙였다.
"경허선사 참선곡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무명업식 독한 술에 혼혼불각 지나가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듣고 꾸짖어도 조심 않고 심상히 지나가니 혼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여 인도할꼬.> 스님이 호보로 꾸짖으시니, 어찌 안거가 끝나는 이 길이 조심 수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다른 스님 하나가 불쑥 말했다.
"스님, 외람되오나, 그건 저기 길가의 팻말에 씌어져 있는, 자연보호 산불조심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은 것이 아니옵니까?"

성철스님이 그제서야 껄껄 웃었다. 그리곤 막대기를 내려치며 말했다.
"마음의 산불을 조심하거라. 그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야."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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