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들 돈 보따리 풀고 있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던 일본 기업들이 돈 보따리를 풀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본 기업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쌓아둔 현금을 풀면서 경제에도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토픽스500 지수에 속한 비(非)금융권 일본 기업의 현금 보유 규모는 2011회계연도 말(2012년 3월 말) 기준 45조엔에서 2012회계연도 말 50조엔, 2013회계연도 말 57조엔(약 577조원)으로 늘었다.
57조엔은 미국 S&P500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8440억달러(약 856조원)의 3분의 2에 가까운 금액이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배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현금 보유 규모가 큰 셈이다.
시가총액 50억달러가 넘는 미국 기업 중 부채보다 자본이 더 많은 기업은 약 25% 정도지만 일본 기업의 40%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현금을 내부에 쌓아왔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가 장기간 디플레이션에 빠져있어 투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최고의 투자방법이었던 셈이다.
현금 보상을 늘려달라는 주주들의 요구도 많지 않았다. 과거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은행 위기를 겪었던 경험도 기업들이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당시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빌릴 수 없었던 기업들은 아예 자체적으로 현금을 쌓아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기업의 현금 투자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 정부의 경기 부양책 덕분에 디플레 국면도 해소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서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스카 기업자문의 타니야 마모루 최고경영자(CEO)는 "과거에는 엔이 강세였기 때문에 마이너스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잦았고 기업들이 현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물가가 오르고 있어 더 이상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근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000개 이상 상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회계연도 설비투자는 전기대비 15% 가량 늘 것으로 예상된다.
자사주 매입도 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일본 기업들은 총 2조6200억엔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는데 전년동기대비 34% 증가한 것이다. 2012년 같은 기간에 비하면 5배로 늘었다.
종합상사 미쓰이 물산은 지난 2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오카다 조지 미쓰이 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품 시장이 부진해 투자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현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에도 투자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면 더 많은 현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은행들의 건전성도 크게 개선된 점도 더 이상 기업들이 굳이 현금을 쌓아둘 필요가 없어진 이유가 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분기 보고서에서 현재 일본 은행들의 건전성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좋다고 평했다. 과거 유동성 위기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위험한 투자를 자제했고 결과적으로 은행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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