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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은 부풀려졌다"…아랍미술이 폭로한 현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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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과 모래로 구성된 '아랍의 봄' 작품 앞에선 파이살 삼라(국적 사우디 아라비아)

풍선과 모래로 구성된 '아랍의 봄' 작품 앞에선 파이살 삼라(국적 사우디 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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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아랍의 봄'은 서구에 의해 오히려 부풀려졌으며,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진정한 반란은 이제야 시작되는 것 같다. 가난과 속박, 실업 등 복잡한 상황들이 아랍권 국가에 횡횡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작가 파이살 삼라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산 모양처럼 쌓은 모래 위에 올려진 네 개의 풍선에는 아랍어로 '아랍의 봄'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백·흑·적·녹색 풍선들은 이슬람권의 중동 국가들을 의미한다. 사막을 상징하는 모래가 부풀어져 터질 것 같은 '중동 풍선'을 위태롭게 지지하고 있다. 내전, 시위가 끊이지 않는 아랍 국가들의 긴장상태를 뜻하면서도, 한편으론 서구에 의해 오히려 부풀려진 '아랍의 봄'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2010년 말 일어난 아랍의 봄은 독재, 인권 침해, 정부 부패, 실업, 기근 등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혁명을 뜻한다.
한-아랍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아랍문화제'의 메인 전시 '아랍현대미술전'이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네모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중동의 현실, 괴리감, 폭력과 분쟁, 억압이 묘사돼 있다. 모로코 출신의 핫산 핫자즈의 작품 '나의 록스타' 시리즈에서는 삶의 환희를 보여주는 거리 공연가, 록스타, 음악가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서구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코카콜라, 세븐업 등의 상품들로 채워진 테두리에 갇혀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모로코 출신 핫산 핫자즈의 '나의 록스타' 시리즈.

모로코 출신 핫산 핫자즈의 '나의 록스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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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작가 오사마 디아브, 최후의 만찬

팔레스타인 작가 오사마 디아브,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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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다마스쿠스 태생이자 팔레스타인 국적을 지닌 팝아트 작가 오사마 디아브는 현재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을 내놨다. 디지털 양식으로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한 이 작품은 복면을 쓴 13명의 인물들이 예수와 12제자의 최후의 만찬을 차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식탁에는 음식이 아닌 마스크들이 놓여 있다. 인물들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갈등을 빚는 사회 속에 망명과 이주의 경험들, 세계화의 모순들을 체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 작가 라에다 사데는 '진공청소기'란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로 알려진 예리코와 사해 사이에 있는 사막에서 작가는 발전기에 연결된 400미터의 케이블을 단 청소기를 틀며 걷고 있다. 이 퍼포먼스는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한다. 작가는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상황을 부조리한 현실에 대입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점령된 장소에 거주하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 받아야 하는 사적·공적 불이익을 퍼포먼스와 설치를 통해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작가 라에다 사데의 '진공청소기'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작가 라에다 사데의 '진공청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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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아랍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랍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작품들에 담긴 속사정을 추적하며 아랍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나 편견을 벗고 이들의 현실과 사회비판을 엿볼 수 있다. 전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랍문화에는 서구와의 역사적 식민관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서구 중심의 편견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들도 내재해 있다. '중동'이란 말 자체도 19세기 말 대영제국을 이뤘던 영국이 편의상 만들어 놓은 지리, 정치적 분류 지역을 뜻한다. 영국을 세상에 중심에 두고 동쪽을 오리엔트로 부르면서 아시아를 극동, 발칸반도와 그리스를 근동 그리고 아랍지역을 중동으로 구분했던 것이다. 최근 아랍 도시들 간의 연결고리가 강화되면서 시리아 내전, 팔레스타인 영역문제, 아랍에미리트 등 경제성장으로 인한 인구이동, 정체성 문제 등 아랍권 지형의 급격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김유연 전시 기획자는 "아랍의 안과 밖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삶과 역사적 경험이 뒤얽힌 문화적 혼합물을 다루는데 실로 다양하고 복잡한 감성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며 "디지털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현 시대의 아랍 지성인들에게는 국제적 사고와 일상적 삶 자체에 대한 비평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획자는 "아랍현대미술을 정의하기 보다는 보편적 인류문제, 지적 탐구, 사회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한 전시"라며 "아랍의 현실적 경험을 토대로 한 비평이라 볼 수 있지만 삶 그 자체, 실패, 개혁, 항의, 소유, 고통 등을 다루기 때문에 삶의 보편적인 이슈들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랍현대미술전은 오는 31일 서울 전시를 마무리한 후 다음달 4일부터 7월 3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진다. 모로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오만, 레바논, 바레인,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아랍 10개국 작가 22명이 참여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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