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작가 파이살 삼라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산 모양처럼 쌓은 모래 위에 올려진 네 개의 풍선에는 아랍어로 '아랍의 봄'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백·흑·적·녹색 풍선들은 이슬람권의 중동 국가들을 의미한다. 사막을 상징하는 모래가 부풀어져 터질 것 같은 '중동 풍선'을 위태롭게 지지하고 있다. 내전, 시위가 끊이지 않는 아랍 국가들의 긴장상태를 뜻하면서도, 한편으론 서구에 의해 오히려 부풀려진 '아랍의 봄'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2010년 말 일어난 아랍의 봄은 독재, 인권 침해, 정부 부패, 실업, 기근 등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혁명을 뜻한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태생이자 팔레스타인 국적을 지닌 팝아트 작가 오사마 디아브는 현재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을 내놨다. 디지털 양식으로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한 이 작품은 복면을 쓴 13명의 인물들이 예수와 12제자의 최후의 만찬을 차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식탁에는 음식이 아닌 마스크들이 놓여 있다. 인물들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갈등을 빚는 사회 속에 망명과 이주의 경험들, 세계화의 모순들을 체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 작가 라에다 사데는 '진공청소기'란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로 알려진 예리코와 사해 사이에 있는 사막에서 작가는 발전기에 연결된 400미터의 케이블을 단 청소기를 틀며 걷고 있다. 이 퍼포먼스는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한다. 작가는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상황을 부조리한 현실에 대입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 점령된 장소에 거주하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 받아야 하는 사적·공적 불이익을 퍼포먼스와 설치를 통해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같은 아랍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랍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작품들에 담긴 속사정을 추적하며 아랍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나 편견을 벗고 이들의 현실과 사회비판을 엿볼 수 있다. 전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랍문화에는 서구와의 역사적 식민관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서구 중심의 편견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들도 내재해 있다. '중동'이란 말 자체도 19세기 말 대영제국을 이뤘던 영국이 편의상 만들어 놓은 지리, 정치적 분류 지역을 뜻한다. 영국을 세상에 중심에 두고 동쪽을 오리엔트로 부르면서 아시아를 극동, 발칸반도와 그리스를 근동 그리고 아랍지역을 중동으로 구분했던 것이다. 최근 아랍 도시들 간의 연결고리가 강화되면서 시리아 내전, 팔레스타인 영역문제, 아랍에미리트 등 경제성장으로 인한 인구이동, 정체성 문제 등 아랍권 지형의 급격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김 기획자는 "아랍현대미술을 정의하기 보다는 보편적 인류문제, 지적 탐구, 사회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한 전시"라며 "아랍의 현실적 경험을 토대로 한 비평이라 볼 수 있지만 삶 그 자체, 실패, 개혁, 항의, 소유, 고통 등을 다루기 때문에 삶의 보편적인 이슈들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랍현대미술전은 오는 31일 서울 전시를 마무리한 후 다음달 4일부터 7월 3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진다. 모로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오만, 레바논, 바레인,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아랍 10개국 작가 22명이 참여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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