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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자식을 죽여야 자식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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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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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출장 차 도쿄에 머무른 적이 있다. 서울에서는 거의 TV를 보지 않는 나지만 10년 가까이 살았던 도쿄에 가면 언제나 TV를 켜놓고 일본 사회의 변화상과 관심사를 지켜보곤 한다. 그때 TBS라는 민영TV에서 대단히 흥미 있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최근의 일본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한 조사를 소개하고 출연자들이 자신의 감상을 토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날의 주제는 지금 일본 사회의 큰 논란거리인 '유토리 세대'의 사회 진출이었다. '유토리'는 여유를 뜻하는 일본어로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해찬 세대'와 유사하다. 2003년부터 시작된 유토리 교육은 학생들의 학습 시간을 대폭 줄이고 학습 이외의 시간을 늘리는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즉 주입식 교육, 경쟁 위주의 교육이 낳은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 야심찬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학생들의 성적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만사에 의욕이 없는 8만엔(88만원) 세대가 양산되었다. 이런 유토리 세대의 사회 진출은 일본 기업에 대단한 충격을 주고 있다.
TBS의 조사는 바로 이런 기업의 충격을 분석하고 있었다. 사원수 1000명 이상의 23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22.6%의 기업이 학생의 부모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네 개 중 한 개의 기업이 학생 본인이 아닌 부모로부터 취업과 근무에 대한 문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토리 세대에게 부모와 함께하는(?) 직장 생활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사례도 있었다. 어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야간 업무를 시켰는데 다음 날 어머니로부터 '내 자식에게 무슨 짓이냐'는 항의가 왔다. 오늘의 일본을 일으킨 세대는 경악할 만한 변화가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하지만 인형처럼 길러지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 역시 부모에 의한, 부모를 위한, 부모의 자식이 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 역시 취업지망생의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이 한국 학생 합격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한국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 간의 경쟁은 치열하고 주어진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학생들은 부모가 정해 준 코스대로 왔기 때문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 학생의 SAT 점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태의 반영이다. 한국 학생은 SAT 점수와 고교 성적은 좋지만 그것이 그 학생의 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오히려 자식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조선시대 한석봉의 이야기는 때로는 '냉혹한'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보상을 해줬는가를 잘 보여준다.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 중기의 서예가 한석봉은 행서, 초서 등 각 서체에 능한 천재였다. 이 한석봉을 만든 사람이 바로 떡장사를 해서 아들을 뒷바라지한 어머니였다. 절에 공부하러 보낸 아들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집에 돌아오자 불을 끄고 글자를 쓰게 해서 바로 쫓아 보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나는 자식을 키우기 전까지는 한석봉의 어머니를 단지 냉철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두 딸을 키우면서 한석봉 어머니의 결단이 얼마나 처절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멀리 타향에서 자식이 돌아왔을 때 하다못해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여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당일로 자식을 쫓아 보내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지는 내가 부모가 되고서야 알았다.

캥거루 세대에 인용되는 캥거루 새끼도 9개월을 주머니에서 머무를 뿐 그 이후는 어미에게서 벗어나 독립한다. 이제 우리의 젊은이도 대학생이 되는 순간 강제로라도 캥거루 주머니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냉혹함이 가장 큰 애정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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