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공황부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글로벌 경제 휘청일때마다 해법놓고 두 이론 충돌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의 사상의 기초가 됐던 인물은 영국 경제학계의 거장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이다. 경제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경제학 원리'를 저술한 마셜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케인스의 영민함에 반해 그에게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스승의 권유에 따라 경제학으로 눈을 돌린 케인스는 졸업 후 공직생활에 발을 디딘다. 당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이다. 전쟁이 남기고 간 참상을 목도한 케인스는 1919년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베르사유 조약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내놓아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경제학을 다른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케인즈는 물가상승과 통화가치 붕괴, 실업에 관해 늘 우려했다. 이후 1922년 '맨체스터 가디언'의 기고문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케인스 진영' 사상의 토대가 되는 주장을 펼쳤다. 바로 '정부가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개입론이다.
이렇게 시작된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논쟁은 한 세기가 넘게 지속되고 있다. 당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월스트리트 금융가가 붕괴하자 '하이에크 신봉자'였던 부시 전 대통령은 하이에크를 포기하고 케인스를 선택했다.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헤드라인 제목은 '돌아온 케인스'였다. 하지만 뒤이어 오바마 대통령도 역시 막대한 예산을 경제에 투입하자, 이를 반대하는 티파티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에 앞장섰던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재무부 장관에게 "미 국민은 망한 기업 살리자고 돈 쓰는 걸 싫어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와 함께 순식간에 하이에크의 책 '노예의 길'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간 '케인스 하이에크'에서는 이 두 경제학의 맞수가 벌인 '100년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상황에서 이 둘이 어떻게 다르게 대처했는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구조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사상적 특징뿐만 아니라 성격과 분위기, 말투, 주변인물 등에 대한 차이점을 더욱 부각시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이 둘이 직접 대면하거나 논쟁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마저 흐른다.
저자는 레이건과 대처의 전기작가로도 유명한 '타임스' 창간 편집인 니컬러스 웝숏이다. 인물의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주요 주장과 논박은 양 측의 입장을 골고루 전달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고, 이들의 개인적 처지나 심리를 분석한 대목은 어느 책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부분이라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경제학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둘 중 어느 쪽 주장이 더 일리가 있는지 그 논쟁의 현장에 뛰어들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케인스 하이에크'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경제서'이자, 두 천재 경제학자에 관한 '위인전'이면서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들려주는 '역사서'로서의 기능을 모두 충족시킨다.
(케인스 하이에크 / 니컬러스 웝숏 / 김홍식 옮김 / 부키 / 2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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