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내려오는 날짜의 질서, 자연의 변화 역법으로 풀어내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봄이다. 씨 뿌릴 때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깨닫는 이치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밤의 왕국' 겨울이 가고 봄은 낮이 점점 길어진다. 대지는 온도가 서서히 올라간다. 차가운 땅에서 따스한 땅으로 바뀌면서 씨를 뿌리면 싹을 틔울 확률이 높아진다. 살랑살랑~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화사한 꽃들이 몽글몽글 깨어나는 계절. 여성의 옷차림에서도 봄은 시작된다.
◆밤에서 낮으로 가는 봄 기차, 입춘(立春)=2월4일을 말한다. 이때의 태양의 각(황경)은 315도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그러나 여전히 밤이 낮보다 더 길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예부터 입춘이 되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시기로 삼았다.
여자들은 집안 곳곳에 쌓여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남자들은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했다. 씨를 뿌리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한 것이다. 어둡고 긴 밤의 계절인 겨울이 끝나고 '낮의 왕국' 봄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소리가 들린다, 경칩(驚蟄)=땅이 녹고 봄비가 내리면 이제 소리가 일어난다. 황경은 345도이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소리가 개구리 울음이다. 개구리 소리와 함께 대지에는 보리 싹이 새파랗게 돋아난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식물들이 깨어나는 소리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식물들이 깨어난다고 해서 경칩은 다른 말로 '식물 기간'이라고도 불린다. 이때부터 대지는 씨 뿌리는 사람들도 가득 찬다. 이때를 지나면 추위는 물러난다. 장을 담그고 대지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퇴비를 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낮과 밤이 같아진다, 춘분(春分)=황경은 0도이다.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나 밤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낮과 밤이 정확히 같아지는 절기이다. 춘분은 말 그대로 봄의 계절이다. 춘분에서부터 약 한 달 동안 기온이 급상승한다. 두터웠던 겨울옷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뀌는 절기이다. 입춘에서 시작된 봄 기차는 물과 소리를 싣고 마침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역'에 도착하는 셈이다
◆아시아는 '태음태양력'=한국천문연구원은 1년 동안 태양의 변화와 황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민병희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서양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그레고리역이 관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은 태양력과 함께 음력도 중요하다"며 "뚜렷한 강제규정은 없지만 예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문화"라고 설명했다.
문 박사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추분점을 시작으로 황경을 나누고 이를 15일로 나눠 24절기를 만든 것"이라며 "이런 사실은 과학적 사고방식보다는 우리나라 조상들의 경우 예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농경이 가장 중요하고 농경사회에서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자연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민 박사는 "첨단을 화두로 미래 사회 구현을 앞당기는 것만이 과학은 아니다"라며 "태양과 달에서 비롯된 24절기는 그저 있는 것, 그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연구하고 이를 밑바탕으로 삼는 것이 천문과학"이라고 강조했다.
지나간 것, 그리고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과거에 계속 존재했던 것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과학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민 박사는 "역법은 그런 측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과학이며 이를 통해 날짜를 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며 "24절기와 365일이라는 숫자의 개념은 1년의 날짜를 정해주고 배분하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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