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민생은 박제가 됐다. 여기 저기 쇼윈도에 전시된 겉만 그럴 듯한 박제다. 허위와 가식과 기만이란 방부제로 범벅이 됐다. 그나마 국민여론이 나쁠 때 전시됐다가 창고에 다시 처박히기 일쑤다. 박제가 되다 보니 당연히 삶과 유리된다.
민생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반대말이 없다. 생의 반대말은 사(死)이고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다. 생과 사, 삶과 죽음은 절실하다. 민생속에 생과 삶이 진짜로 있다면 절실했어야 한다. 정말 절실하지 못했다. 그러니 열심히 살다가 죽음을 택한 세모녀가 도리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민생, 절실하지 않은 민생은 박제다. 박제는 주검이다. 주검이 삶을 보존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생활고를 비관해 죽어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민생을 말한 책임있는 자들이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말이 있다. 또 '사람이 궁할 때는 대 끝에서도 삼년을 산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사니까 사람이다. 삶은 고귀하면서도 이토록 질긴 것이다. 이 모진 사람들이 줄줄이 고귀한 삶을 포기하고 있다. 민생을 그만 거론하라. 삶을 살려야 할 때다. 누가 나서야 하나. 모두 나서야 한다. 절실한 마음으로. "한 번에 한 사람씩 안았다"는 테레사 수녀의 절실함으로 모두가 나서야 한다. 더 큰 책임은 기회만 되면 민생을 외치면서 민생을 주검으로 만든 사람들이 걸머져야 한다. 대통령, 여당, 야당, 정부, 기업, 사회단체. 공동체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집단들이 절실함으로 다가서야 한다.
예산 타령하고 절차 타령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더 이상 삶의 존엄을 개인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떠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개인이 일을 하려해도, 가족이 책임지려 해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질긴 삶을 놔버렸다. 양극화를 초래하고 방치한 게 누구인가. 과실은 누가 가졌나. 아니 열심히 막으려 하고 노력했다고 인정하자. 그래도 해결하지 못한 무능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인이라면 삭풍이 부는 허허벌판에 수백만 국민을 배고픔과 추위에 떨게한 데 대해 죄송스러움 정도는 가져야 할 때다.
최창환 대기자 choiasia@
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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