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하늘빛이/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의 '문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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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 하나 먹고? 아기를 먹다니. 어린 시절 흉흉한 그런 소문들을 듣긴 했다. 미당이 그것만을 채택해서 덜컥 썼다면, 살인교사죄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이 대목이야 말로 '엽기'다. 미당은 왜 이런 엽기를 동원했는가. 대체 여기에 나오는 아기가 뭐란 말인가. 왜 달이 뜨면 아기를 먹었을까. 아기가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지만, 아마도 아기가 가진 상징성, 예를 들면 희망이라든가, 빛이라든가, 보드라움과 아름다움이라든가, 목숨이라든가, 그런 걸로 생각하면 새로운 의미 구조가 떠오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문둥이는 달 뜨는 밤에 보리밭에 앉아 자기 희망과 자기 목숨을 뜯어먹었던 거라고 혹자는 말한다. 물론 나는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문둥이가 뜯어먹은 것은 진짜 사람이며 '꽃처럼 붉은'은 피 묻은 입술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시는 늘 새롭게 읽힌다. 한 시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 시인 아무도 미당의 저 '문둥이'를 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창을 넘어서지 못하는 무력감을 그는 늘 느껴왔다고.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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