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귀밑 사마귀'
■ 옛날에는 귀밑 사마귀 소녀가 있었다. 요즘은 다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귀밑에 돋아난 발그레한 정념같은 사마귀 하나로 온통 그립던 사람이 있었다. 귀밑 사마귀를 바라보려면, 그녀를 도사리고 앉혀야 한다. 눈 앞에 앉아 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고, 정말 가는 거냐고 다급하게 물을 만한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녀는 자꾸 내 눈길을 피해 먼데 산을 쳐다보는데 나는, 외면하는 그녀의 몸을 돌려 바로 앉히며 물어야 한다. 감은 눈썹 위에 달빛 나리는, 눈이 쌓이는, 그 옆 얼굴에게, 살 눈썹 길씀한 그녀에게, 피를 뱉듯 물어야 한다. 명멸(明滅)하는 시간의 어느 흐름이든 붙잡고, 그 귀밑 사마귀 울던 소녀를 데려와 앉히고 싶지만, 산수유 꽃눈 쌓이는 봄의 슴벅이는 눈시울 속 희끄므레한 잔상일 뿐인 것을. 그 소녀, 사마귀 예쁘던 귓가에 들려준 내 순정의 거친 고백, 이제 바람에 몰려간 먼지처럼 죽어도 못 올 길을 가버린 것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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