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작 문재인 후보 자신도 민주당에 '입당'을 통해 합류한 것이 아니다. 지난 해 민주당의 창당 과정을 보면 이해찬, 문재인 등이 주도했던 '혁신과 통합'의 인사들은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시민들의 바람을 반영해 민주당을 더 크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입당방식이 아닌 세력통합 방식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존 민주당 내부는 정당도 아닌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혁신과 통합의 이런 주장을 정략적 접근으로 보고 크게 반발했으나 이들은 결국 입당이 아닌 세력 통합을 통해 민주당에 합류했다.
민주당이 안 후보의 입당을 압박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안철수 현상=민주당 불신'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면 개인에 불과한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은 지지를 획득하는지에 대한 민주당의 좀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의 모습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을 살피지 않고 정당정치에 대한 교과서적 입장을 고집하며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을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얼굴 두꺼운 정치'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정당정치를 불신의 대상이 되도록 한 것은 안철수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십 수년간 당 깨고 합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해 온 것은 민주당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도 만일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역사적 책무보다는 정당정치를 우선순위로 친다면 안 후보에게 단일화하자고 집적거리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무소속 후보가 완주하는 것이 민주국가 선거에 있어 특별한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 재검표까지 가며 박빙의 차이로 승리했던 2000년 미 대선에는 제3후보인 시민운동가 출신 랄프 네이더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당시 미 민주당은 네이더에게 '후보단일화'하자고 조르지도 않았으며, 또 패배 이후 역사적 책임을 네이더 후보에게 돌리지도 않았다. 즉 문 후보 스스로가 '정당정치'와 '민주당 지키기'가 대선승리보다도 더 중대한 시대정신이라고 판단한다면 단일화에 미련을 갖지 말고 무소속 후보에게 지지층을 뺏긴 자신의 과오를 깊이 성찰하면서, 또 안철수의 역사의식을 믿고 스스로 의연하게 자기 갈 길만 가는 것이 옳다. 반대로 정권교체와 구체제 청산이 모든 것에 앞선 시대정신이라고 판단한다면 낡은 정당주의나 작은 민주당의 틀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안 후보에 무리하게 입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여론조사를 볼 때 야권의 유권자들은 지금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 즉, 그들 야권지지층들은 '정권교체'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두 후보의 역사적 책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모든 판단은 궁극적으로 문 후보 스스로의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다. 만일 안철수씨가 당선되어 무소속의 한계로 성공한 대통령이 못되면 그것은 안철수의 역사적 책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이 작은 민주당의 틀을 고집해 대선에 진다면 초보 정치인 안철수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결단에 주저한 문재인의 책임으로 기록되는 것이 맞다. 사실 그게 지금의 여론이 보여주는 안철수 현상의 의미다.
김헌태 정치평론가ㆍ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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