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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단골손님·반평생 생활터전 다 두고 떠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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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역사 대림시장 문 닫는 날 상인들 표정

▲ 대림시장에서만 40년 넘게 반찬 가게를 해오던 김동숙 할머니. 김 할머니는 반평생을 이곳 시장에서 보냈다.

▲ 대림시장에서만 40년 넘게 반찬 가게를 해오던 김동숙 할머니. 김 할머니는 반평생을 이곳 시장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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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이제 눈도 어둡고 손도 굼뜨고.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다시 장사하겠어? 야채가게 김씨 할머니도 안할꺼고. 쌍방울집, 삼거리집 모두 장사 접는다네. 다달이 20만~30만씩 세 줘야 하는데 이거 팔아가지고 그걸 어떻게 줘?"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시장 한쪽 반찬 가게에 앉아있던 김동숙(74)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김 할머니는 대림시장이 문을 연 1968년부터 40여년을 눈만 뜨면 이곳에 나와 장사를 해왔지만 오는 31일 시장이 문을 닫으면 평생을 해오던 장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
폐업을 앞둔 대림시장은 휑했다. 대부분 빈 점포였고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골목에는 몇몇 단골손님들만 간간이 오갔다. 70~80년대 호황을 누릴 때는 150여개에 달했던 점포수는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 10여개가 남아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정규환 씨의 신발 가게에는 폐업을 앞두고 '점포정리' 종이가 나붙었다.

▲ 정규환 씨의 신발 가게에는 폐업을 앞두고 '점포정리' 종이가 나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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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에 파스를 붙인 채 배추를 절이고 있던 길금순(66) 씨는 뒤늦은 관심을 원망스러워 했다. 지난 4월 시장 부지가 넘어가고 이달 말로 폐업이 확정된 상황에서 무슨 관심이냐는 것이다. 길씨는 "진작 좀 와서 해결을 하던가 다 나가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와서 자꾸 물어보니까 귀찮기만 해"라고 불만을 쏟아내더니 "말이 좋아 합의지 사실은 쫓겨가는 셈이잖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비용 밖에 되지 않는 이주비용으로는 다른 곳에서의 장사는 엄두도 못내는 길씨 역시 일을 관둘 계획이다.

40년째 생선 가게를 해온 김길자(68) 씨도 장사를 그만 하기로 했다. 김씨는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큰누나다. 김씨는 "반평생 생활의 터전인데 갑자기 나가게 돼 서운해. 그래도 우리가 뭐 힘이 있나"라고 말했다. 22년간 신발 장사를 해온 정규환(65) 씨도 "쥐꼬리만한 이주비용을 주는 대로 욕심도 안부리고 받았다"며 "밑지면서 마지막 세일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남으면 친척들 나눠 줄 것"이라고 말했다.
▲ 40년간 생선 좌판을 벌여온 김길자 씨도 대림시장이 폐업하면서 장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 40년간 생선 좌판을 벌여온 김길자 씨도 대림시장이 폐업하면서 장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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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지만 시장 인근지역으로 점포를 옮기는 상인도 있었다. 옷 수선집을 운영하는 심규옥(61) 씨가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심씨는 "옷 수선은 그나마 단골장사고 대형마트의 영향을 덜 받아 그동안 견딜 수 있었다"며 "옮길 가게는 지금 가게의 절반 크기"라고 했다. 그는 "단골손님들이야 이사가도 찾아 오겠지만 옮긴 후에도 지금처럼 장사가 잘 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양재학원을 졸업한 뒤 이곳 대림시장에서 양복맞춤과 옷수선을 하며 아파트도 사고 자녀들도 키워냈다.

㈜대림시장 나한헌 사내이사는 "그동안 시장에 시설투자를 하지 않았고 변화에 둔감했던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소상공인들 위해 미리부터 신경을 썼으면 달랐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그는 "선거 때만 오면 찾아오는 정치인들이 선거 끝나면 '함흥차사'였고 결국 이렇게 됐다"고 꼬집었다.

1968년 문을 연 대림시장은 건어물과 야채, 각종 식기를 주로 취급해 온 전통시장이다. 70~80년대에는 점포 수가 150여개에 달하고 사람들로 북적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인근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결국 수익악화로 부지가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오는 31일이면 대림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구채은 기자 fak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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