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은 또 하나의 기업이 100년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10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도 놀라운 세상에서 100년을 지탱해 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더군다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놓인 인쇄·출판업계에서, 한 우물만 판 기업이 이제 또 다른 100년을 향한 출발을 시작했다. 국내 최고(最古) 인쇄 기업 ‘보진재’가 주인공이다.
보진재는 자운 김진환(子雲 金晉桓) 선생에 의해 1912년 8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1874년 서울에서 태어난 자운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배웠는데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근대 한국미살사의 거장 심전 안중식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그는 대한제국 정부의 교과서 편찬 작업에 10년간 종사하다가 문아당인쇄소 석판부에서 석판미술 인쇄술을 익힌 그는 스스로 보진재를 창립해 민족문화의 아름다움과 민족정신을 널리 표현해내는 일을 시작했다. 대부분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던 인쇄업계에서 드물게 순수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한국사람’의 인쇄소였다. 보진재의 자취는 곧 한국의 근대 인쇄사인 셈이다.
당시 종로1가에 ‘보진재 석판인쇄소’를 창립한 김진환 선생은 회사 당호를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당대의 명필 성당 김돈희 선생이 쓰도록 했다고 한다. 보진재는 북송의 4대 서예가이자 남종화의 대표로 불린 미불(米쏊)의 서재 이름이었다.
김중환 선생에 이어 아들 김낙훈 사장이 보진재를 이끌던 1941년, 그의 보성학교 은사인 이중화가 국어학자 정인승 등과 함께 인쇄소를 찾아와 ‘조선어사전’ 제작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조선총독부가 한글말살정책으로 인한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이윤재·이극로·최현배 선생 등이 잡혀가는 바람에 작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김낙훈 사장은 이들에게서 건내받은 원고를 깊숙이 숨겨뒀다가 해방후 한글학자에게 전달해 ‘한글 큰사전’으로 간행됐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시대를 거치는 동안 보진재가 인쇄한 수많은 책과 잡지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은 반듯한 정신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인식시키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6.25전쟁으로 보진재는 부산으로 피난을 간 상황에서도 보진재는 인쇄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1953년 3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정환 선생의 증손자인 김준기 사장은 보진재를 국내 최고의 인쇄소로 성장시켰다. 한국전쟁으로 사옥이 불타는 어려움을 견뎌내고 원효로에 사옥을 신축한 것은 물론, 활판인쇄공장(운니동), 종합인쇄공장(당산동)을 잇따라 설립했다. 또 일본에 활판 조판물을 수출하는 성과를 보태 보진재를 한층 성숙시켰다. 1968년부터는 출판도 병행해 인쇄·출판사로서 보진재는 새로운 역사를 걷게 된다.
보진재가 제작한 수많은 책들중 대표작은 아랍·아프리카·동유럽·중국 등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성서’다. 박엽지 인쇄분야에서 강점이 있어 여전히 해외 바이어들이 보진재에 인쇄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1992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는 김정선 사장은 1996년 인쇄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등록시켰다. 여러 사정 때문에 2005년 4월 사정상 퇴출돼 아쉬움을 남겼지만 인쇄업계 최초로 주식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다는 점은 의의가 크다.
한편, 보진재는 오는 9월 15일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가을책 잔치인 ‘파주북소리 2012’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공장을 개방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100주년 행사를 실시한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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