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1997년 이전에는 ①과 ②, 1998~2011년에는 ③이 정답이었고, 지금은 ③과 ④가 정답이다. 한국은행법이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쩌면 ⑤와 ⑥도 정답이 되도록 한은법이 또 바뀔지도 모른다. 중앙은행의 목적은 나라에 따라서도 다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목적은 '최대의 고용, 안정적인 물가, 적정한 장기이자율'이다. 호주 준비은행(RBA)의 목적에는 '통화가치의 안정'은 있지만 '물가안정'은 없다.
물가안정은 서민 모두가 바라는 것이니 당연히 서민에게 좋은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물가안정은 그 자체로 화폐가치가 고정된 금융자산을 많이 소유한 계층에 유리하다. 또한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통해 2차적으로 노동소득 증가를 억제한다. 디플레이션보다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이 서민에게 더 나을 수 있다. 최근 재정위기로 경제가 침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난 유럽에서 긴축과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금융자본과 우파 정치세력에 대항해 노동조합과 좌파 정치세력이 긴축 완화와 물가상승 용인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한은이 수행하는 통화신용정책, 다시 말해 금리와 통화공급을 조절하는 정책은 물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성장과 고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올리거나 통화공급을 줄이면 성장과 고용이 위축되고, 반대로 금리를 내리거나 통화공급을 늘리면 성장과 고용이 촉진된다. 그런데 물가안정만 목적으로 부여된 상태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올리고 통화공급을 줄이는 쪽의 편향을 갖는다. 한은의 기능이 성장과 고용을 위축시키는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비와 혼선의 상당부분은 한은의 정책수단에 비해 그 목적이 너무 협소한 데서 비롯됐다. '정부는 성장과 고용, 한은은 물가안정'이라는 분업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론적 논란의 여지가 있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한은도 성장ㆍ고용ㆍ물가안정 모두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런다고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독립성이 문제라면 한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여 대정부 대항력을 키워줄 수 있다. 예컨대 금융통화위원 선임에 대해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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