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친구들은 하와이가 천국인 줄 안다. 천국? 천국 같은 소리 하네.” 지금 한껏 까칠해진 이 남자, 변호사 맷 킹(조니 클루니)은 공사가 다망하다. 아내는 갑작스런 보트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다. 아내에게 맡긴 채 무관심했던 두 딸의 양육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열 살짜리 막내는 너무 조숙하거나 너무 철이 없고,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장녀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는 불만과 반항심만 가득한 눈으로 맷을 바라볼 뿐이다. 밖으로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카우아이 섬의 땅을 처분하는 일도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벼랑 끝에 선 그의 등을 떠미는 결정타가 하나 더 있다. 사고 전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 천국은커녕 지금 맷의 마음은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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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남들은 쉬어가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만약 파라다이스의 정의가 아무도 상처주지 않고 상처입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디센던트>는 지구상에 그런 곳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곳이 아무리 모두가 꿈꾸는 낙원, 하와이라 할지라도. 어떤 이들이 일상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찾는 휴양지가 어떤 이들에겐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쌓이는 고통과 마주하는 곳이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지만 깨어나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제대로, 잘 해보리라 마음먹은 순간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알게 되고,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는 목적이 아내와 바람을 피운 상대를 뒤쫓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착각했던 맷의 발밑에 지뢰처럼 묻혀있던 가족의 비밀과 문제는 하나 둘 터져나와 그의 무심함을 힐난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자극적으로 터뜨려 전시하는 대신 덤덤한 얼굴로 건조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들려주는데, 이것이 오히려 상당한 감정의 파고를 안겨준다. 2004년 영화 <사이드 웨이> 이후 오랜만에 돌아 온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디센던트>에서도 어깨에 힘주지 않고도 묵직한 인생의 잠언을 들려주는 특유의 장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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