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녹차, 의성마늘, 횡성한우, 천안호두, 보은대추, 보르도포도주, 모카커피.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는 이들 상품은 '지리적 표시 농식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는 특정지역의 우수 농산물과 그 가공품에 지역명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우리의 우수한 지리적 특산품을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품질관리법의 규정에 따라 1999년 처음 도입됐다.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상품은 지적재산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법적인 권리가 부여된다.
2001년 '보성녹차'가 국내 지리적 표시 품목 제1호로 등록된 데 이어, 현재 '순창전통고추장' 등 농식품 77개, '상주곶감' 등 임산물 39개, '벌교꼬막' 등 수산물 11개를 포함해 총 127개 품목이 지리적 표시로 등록돼 있다. 도별로는 전남이 32개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북 22개, 강원 20개 순이다.
특히 지리적 특산품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중요한 문헌 등에 기록돼 있다. 예컨대 충북 보은에서 대추 생산이 잘된다는 것은 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언급돼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상주 지방에서 품질 좋은 감이 많이 생산된다고 기록돼 있다. 하동녹차, 순창고추장, 한산모시, 기장미역 등 오늘날 대부분의 지리적 표시 농식품은 옛날부터 임금님의 진상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리적 표시제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국제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제도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지리적 표시 제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로 전통적인 포도주 생산국가들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의 제도 도입을 주도했다. WTO협정은 원산지 국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지리적 표시는 국제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지리적 표시제는 더욱 주목받고 있는데 한국과 칠레, 미국, EU와의 FTA협정에는 지리적 표시 보호가 별도로 규정돼 있다. 특히 EU와의 FTA에서는 한국은 64개, EU는 162개의 지리적 표시 상품을 서로 보호해 주기로 구체적 약정까지 맺었다.
지리적 특산물로 인정받으려면 해당지역 생산ㆍ가공 단체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산림청,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등에 신청하면 지리적표시등록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리적 표시제 등록 상품은 법적으로 표시권을 보호받아, 비등록 품목이 등록 품목의 지리적 표시를 사용하거나 유사한 표시를 하는 경우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무역 관행상 지리적 표시 등록 제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따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리적 표시에 내재된 품질을 믿을 수 있는 데다 등록 과정이 까다로워 지리적 표시 등록을 받은 것만으로 제품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지리적 표시 품목에 대한 정부지원이 거의 없고 등록 후 사후관리와 교육도 소홀한 데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등록을 주도해 생산자들은 수동적이고 애착이 적은 실정이다. 하지만 지리적 표시 제도와 같이 정부가 인정한 각종 표시제도, 인증제도 등은 식생활에서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돕는 유익한 제도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농민, 나아가 우리나라 농업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더구나 지리적 표시를 한 품목의 생산자들은 자기 지역의 자원가치 향상과 역사성 및 사회적 명성도 높일 수 있는, 지역의 공공재산 축적에 한몫을 한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지역의 특산농식품이 한식세계화 전략과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면 농식품 수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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