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원죄는 ‘이브의 애플’ 금융권 원죄는 ‘공자금 수혈’
한국금융은 영원한 죄인인가②
한국 금융의 부도덕성 또는 탐욕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는 일부 비판여론을 등에 업고 금융권 때리기의 맨 앞줄에 나섰다. “과거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사들은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김석동 금융위원장) “서민을 위해 수수료를 낮추는 등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졸지에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가 된 금융권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다. 다만 과거 시장원리에 따라 용인되던 것들이 이제 ‘탐욕’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시장원리와 탐욕의 경계가 어디인지 모호해진 상황에서 비난과 압박에 앞장 선 정부의 역할과 태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껏 ‘시장의 자유’를 용인해온 주체가 바로 정부였기 때문이다.
공적자금 회수율 이미 60% 넘어서
억울하지만 대놓고 하소연도 제대로 못해 답답해하는 한국 금융에는 사실 원죄가 있다. 인류의 원죄를 ‘아담의 사과’라고 빗댄다면 한국금융의 원죄는 ‘공적자금’이다. 한국 금융사들은 회사가 망할 위기에 공적자금으로 목숨을 이어왔다. 그것도 지난 IMF때인 1997년과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두 차례나 말이다. 회수가 안 되면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공적자금 168조6000억원이 그들을 살리는 데 쓰였다.
금융권이 정부와 국민에게 진 빚이다. 하지만 공적자금은 이미 회수율이 60%를 넘어섰다. 이미 60.6%라는 부담을 되갚았다는 얘기다. 지난달 28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IMF때 투입한 공적자금 168조6000억원 가운데 102조2000억원을 회수, 9월말 기준 회수율이60.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공자위가 지난 한 달 동안 거둬들인 공적자금은 61억원이다. 공자위는 전달 파산배당금, 일반채권의 회수를 통해 각각 45억원, 16억원씩 상환했고, 현대투신증권의 자산유동화회사(SPC)도 청산해 1000만원의 공적자금을 거둬들였다. 추가로 지원금은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려고 조성한 신종 공적자금(공적자금Ⅱ)은 현재까지 6조272억원이 지원돼 이 가운데 1조2304억원을 회수했다. 회수율은 20.4%다. 지난달 일반담보부채권 매입과 사후정산으로 467억원을 지원했으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 환매와 미분양아파트 조기상환 등으로 472억원을 걷어들였다.
금융권 때리기 ‘국민정서법’에 따른 것
물론 금융권 모두가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것은 아니다. 민간회사인 이상 이익을 추구하고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한 비난은 다분히 ‘국민정서법’에 따른 것이고, 여기엔 비논리, 비합리가 섞여 있다.
금융권을 성토하는 역할은 금융당국 수장들이 떠안고 나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연일 강도 높게 금융권을 압박하는 중이다. 하지만 금융권 탐욕 논란에서 정부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미국에서 연 ‘한국투자환경 설명회(IR)’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모든 규제는 원점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금융산업 발전을 최우선으로 추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의 합작으로 한쪽에서는 위기를 일으켜도 정부 지원을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시중은행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은행들은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송금과 인출 수수료를 절반씩 인하하는 개선책을 마련한 것이 한 예다.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거둬들인 이자와 수수료를 절반씩이나 내린다는 것은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론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은행 영업방식이 손바닥 뒤집히듯 뒤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사실 현재의 수수료 체계는 금융당국이 마련한 정책적 산물이다. 금융당국은 과거 은행권의 획일적인 수수료 체계를 문제삼아 각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용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각 은행마다 수수료가 상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수료가 금융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점에서, 금융사들의 관련 서비스가 점차 개선돼 온 것도 사실이다. 금융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경쟁에 나서면서 발생한 긍정적 효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수수료가 천편일률적인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은행들로서는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서비스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낮아질 것은 뻔하다. 최근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를 내놓으면서 기존의 카드 혜택을 축소한 것이 같은 맥락이다.
무리한 공공성 요구 카드 수수료 분쟁 불러
금융의 공공성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수익성은 외면한 채 무작정 공공성만 요구하는 시선도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시선들이 금융계를 부지불식간에 사리사욕만 챙기는 몰염치한 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은 분명 사적 영역임에도 공적 기능이 더 강조된다. 아직도 금융회사라는 말보다 ‘금융기관’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금융기관이 요즘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언론기사는 ‘돈을 많이 벌었다’는 내용이다.
몇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돈을 못 벌면 못 번다고 두들겨 맞고,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비난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금융기관에 대해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공공성을 요구하는 방법과 절차는 한 번 되짚어봐야 한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대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면 금융기관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개선책을 내놓는 과정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닫기 일쑤다.
서민을 위하고 금융 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순 없지만 시장을 무시하고, 절차를 생략한 채 무조건 몰아붙이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카드 수수료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카드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요율을 낮추라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이 문제의 근원에 대한 심사숙고 없이 보여주기식 정책을 펴다 보니 생긴 불협화음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금융기관의 사회적 역할과 성격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의 역할, 금융·공정거래 관련법 등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점검하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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