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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고객에게 외상 허용...범죄 키운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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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직원 3년간 174억원어치 상품권 빼돌려 돌려막기 어떻게 가능했나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카드사에 이어 시중은행에서도 상품권 판매와 관련된 직원의 대형 비리사건이 터져 금융권이 상품권 판매에 대한 자체 진단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이번에 사건이 터진 A은행의 경우 본점 대리가 최근 3년간 국민관광상품권을 빼돌려 20억여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져 어떻게 은행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은행은 이에 대해 외상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악용한 직원의 개인적인 '지능형 범죄'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주관하는 국민관광상품권은 '코리아트래블즈'가 발행하고 은행이 판매를 대행한다.

연간 판매 규모가 1000억원에 달하는 이 상품권은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면세점·호텔·콘도·여행사·골프장·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A은행은 2001년부터 코리아트래블즈와 업무를 제휴해 전국 지점에서 이 상품권을 취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기업·광주은행도 판매에 나서 현재 이 상품권을 판매하는 은행은 총 3곳이다. A은행의 판매실적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A은행은 지난해 1275억원어치를 팔았고 지난해 7월부터 팔기 시작한 기업은행의 최근 1년간 판매액은 14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부터 판매에 들어간 광주은행의 실적은 약 9억7000만원이다.

은행별로 판매방식은 약간 다르다. A은행의 경우 개인에게 판매할 때는 현금이나 카드 결제만 허용하지만 기업 고객에게는 한달 간격의 외상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 기업이 A은행 지점에 1000만원어치 상품권을 주문해 받아간 뒤 한달 안에 대금을 납부하면 되는 식이다. 다른 은행은 기업이든 개인이든 외상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
A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신 모(41) 대리는 바로 기업에 대한 외상판매에 착안했다. 신 씨는 과거 거래실적이 있는 한 공기업이 관광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것처럼 조작했다. 이 공기업이 한번에 2000만~5000만원씩 한달에 3~4차례 상품권을 사들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원래 기업이 은행 지점의 담당자를 만나 상품권을 직접 구매하는 게 일반적인 구조인데 신 씨는 본인이 직접 해당 기업에 영업을 해서 실적을 따온 것으로 속여 지점에 이 물량을 배정했다. 그는 코리아트래블즈에서 내준 상품권을 기업에 전달하는 역할도 자청해 상품권 판매와 공급 업무를 도맡았다. 이 때문에 다른 직원들은 신 씨가 3년간이나 가공거래를 일으켜 돈을 빼먹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신 씨는 특정지점에 판매 물량을 몰아주지 않고 3년간 총 60여개 지점에 실적을 골고루 배정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신 씨는 이런 수법으로 지난 3년간 174억7000만원어치의 가공매출을 일으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신 씨가 착복한 돈은 20억여원. 은행에서 판매수당 8000만원도 받았다. 그는 빼돌린 상품권을 명동 일대 암시장에서 액면가의 95% 가량을 받고 팔아넘겼다. 한달 뒤 결제시점에 5%의 돈이 비지만 신 씨는 매달 수차례씩 상품권을 빼돌려 챙긴 돈으로 결제대금을 돌려막는 수법을 썼다.

A은행이 2008년부터 올 6월까지 판매한 국민관광상품권은 총 3228억원어치. 신 씨 한명이 일으킨 가공매출이 전체 판매실적의 5% 를 넘는 셈이다. 이 때문에 A은행 관련 부서는 패닉에 휩싸인 형국이다. A은행은 뒤늦게 내부감사를 통해 신 씨의 범행을 적발한 뒤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한편 지난 8일 경찰에 고발했다. 내부비리는 자체 조사가 가능하지만 외부 업체와 관련된 부분은 수사당국의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은 문제없나= 현재 시중은행들은 영업 창구에서 각종 상품권을 판매하고 있다. 예컨대 기프트(선불)카드를 포함해 백화점·문화상품권 등이다. A은행은 국민관광상품권 외에 다른 상품권은 취급하지 않는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법인이든 개인이든 외상거래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유사한 범죄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국민관광상품권을 판매하고 있는 광주은행은 코리아트래블즈 측으로부터 외상거래가 가능하도록 요청을 받았지만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이를 거부했다.

A은행은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논의할 방침이다. 다만 기본적으로 외상거래 여부는 상품권 판매 주체인 코리아트래블즈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 4월 적발된 대기업 계열 카드사 직원이 65억원대 기프트(선불)카드를 빼돌린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이들은 한 외국계 회사가 기프트카드를 대량으로 주문한 것처럼 속여 기프트카드를 발급받은 뒤 현금화해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재발 방지를 위해 이르면 다음달부터 기프트카드의 외상거래를 금지할 방침이다.




박민규 기자 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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