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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의 영웅' 서정우 하사, 천국에서 학사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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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정우야, 졸업장을 받아서 너무 기쁘다. 이 졸업장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큰 의미가 있다. 그러니 비굴해지지 말고 자랑스럽게 졸업장을 받아라.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국가를 지키다가 전사한 네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할 것이다. 정우야!…"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하늘로 떠나버린 고(故) 서정우 하사(사진)의 명예졸업장을 대신 받아든 아버지 서래일(53)씨는 졸업식이 끝난 뒤 굳게 다물었던 입을 가까스로 열어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첫 마디를 꺼내기까지 호흡을 한참 가다듬어야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꺼내놓던 서씨는 마지막으로 "정우야!"를 외치고는 고개를 숙인 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오전, 해병대 연평부대 '말년 병장'이자 중화기 중대 최고의 공용화기 사수였던 서 하사는 마지막 휴가증을 받아들고 인천으로 나가는 배를 타려 연평도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됐고 포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한 서 하사는 발길을 돌려 부대로 뛰어가다가 포탄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던 그는 '말년 휴가'의 달콤함과 만기 전역의 기쁨을 모두 뒤로 한 채 제대로 치료 한 번 못 받아보고 끝내 숨을 거뒀다.

휴가 좀 나가자며 배가 꼭 뜨길 바라는 글을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남겼던 서 하사는 국제변호사를 꿈꾸는 22세의 건강한 청년이었다. 2008년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軍)휴학을 한 뒤 해병대에 1088기로 입대했다. 그가 전사한 날은 제대를 약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서 하사가 전사하자 군은 그를 병장에서 하사로 1계급 특진시켰고 단국대는 즉시 서 하사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키로 결정했다. 지난 18일 오전 10시 충청남도 천안시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극장에서 열린 201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 고인의 아버지 서씨와 어머니 김오복(52)씨가 아들 대신 참석했다.
지난 18일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201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연평도 포격 때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 아버지 서래일(오른쪽)씨와 어머니 김오복 씨가 서 하사 대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지난 18일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201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연평도 포격 때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 아버지 서래일(오른쪽)씨와 어머니 김오복 씨가 서 하사 대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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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제일 앞 줄에 자리한 서씨 부부는 학사학위 수여식, 석사학위 수여식, 박사학위 수여식이 진행되는 내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그나마 담담하게 수여식을 지켜보던 아버지 서씨와 달리 어머니 김씨는 다른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고 이를 축하하는 가족들의 환호가 쏟아질 때마다 아들 생각에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 박사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명예졸업장 수여식이 시작되자 서씨 부부가 연단에 올랐다. 졸업장을 건네받은 김씨는 이전까지와 달리 소리 내 울었고 객석에서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박수가 오래 이어졌다.

김씨는 식장을 나서면서 "정우가 받을 졸업장을 3년이나 먼저 저희가 받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간이 흐르면서 연평도 사태의 의미가 잊혀지는 것 같다"면서 "아들이 전사한 일의 의미가 계속 기억되면 좋겠다"고 했다.

서씨 부부 뒷 줄에서 딸이 학사학위 받는 걸 지켜본 학부모 김영자(53ㆍ여)씨는 이들이 서 하사 부모인 것을 명예졸업장 수여식 때가 돼서야 알았다. 수여식을 지켜보며 함께 눈물을 흘린 김씨는 "서 하사 부모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일 것이다"며 "그 일(연평도 포격)만 아니었다면 부모님이 대신 졸업장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김형남(법학과 학과장) 교수는 "서 하사가 제대한 뒤 영광스럽게 학사모를 쓴 모습, 국제변호사가 된 모습이 자꾸 연상돼 슬픔이 북받쳤다"면서 "우리 국민이 연평도 사태의 기억을 일깨워 제2, 제3의 서 하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천안=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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