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20일 토요일 오후 7시 20분께.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을 위해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 마련된 유세 단상에 막 오르려던 참이었다. 50대 사내가 갑자기 군중 틈에서 뛰쳐나와 문구용 칼로 그녀의 오른쪽 얼굴을 그었다.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져 3시간에 걸쳐 60여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친 그녀는 다음 날 새벽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입을 떼었다. "대전은요?"

한나라당은 그 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광주, 전북, 전남, 제주, 그리고 대전을 제외한 전국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여당 텃밭인 호남과 무소속 강세인 제주는 그렇다 쳐도 대전은 아까웠다. 하지만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은 열린우리당 후보의 절반을 밑돌아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그러나 병상에서의 그녀의 한 마디, "대전은요?"가 판세를 흔들었다.


보수층의 결집에 부동층의 지지까지 끌어내면서 호남을 뺀 전국의 13개 광역단체장은 물론 서울시 25개 구청장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기초단체장까지 휩쓸었다. 역전이 불가능해 보였던 대전은? 뒤집었다. 2004년 '4ㆍ15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의 위기 속에서 당을 지켜내고 이어진 각종 재ㆍ보궐 선거에서 '40대 0'이라는 '근혜 불패' 신화를 써 온 그녀가 '선거의 여왕'임을 새삼 깨닫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 '선거의 여왕'이 '6ㆍ2 지방선거'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체의 지원 유세 없이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물렀다. 물론 그녀가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은 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8년 '4ㆍ9총선' 때부터 사실상 지원 유세를 '거부'했다. 자신의 측근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한, 이른 바 '친박계 공천 대학살'이 원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생긴 이명박 대통령과의 반목 때문이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둘은 몇 차례 만나긴 했다. 하지만 틈이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더 벌어져 왔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둘의 관계가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데에는 다들 부정적이다.


'6ㆍ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억측이 분분하다. 박 전 대표를 무시한 당연한 결과라는 말도 있고, 당의 패배는 물론 자기 지역구 패배도 막지 못했으니 그녀의 영향력도 이제 다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설들은 한나라당 전체로 보면 지엽적이다.


패배 원인은 박 전 대표가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정부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민심이반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선과 오만의 이면에는 당내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당내 갈등조차 해소하지 못하면서 민심을 아우를 수 있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민심이반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일방 통행식 정책의 수정, 대대적인 인적쇄신도 필요하지만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 박 전 대표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박 전 대표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한나라당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제까지 서로가 대놓고 말하기를 꺼려해 왔지만 지방선거의 패배는 둘 모두에게 '물음에 답해야 할 때'라는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AD

이-박 관계가 정리되기 전에는, 한나라당은 백날 가야 그게 그거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끌어안지 않는 이유를,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남아있는 이유를 서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가. 국민 앞에 말해 보라.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