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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거부하는 노년, 맞이하는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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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젊은 날이 계속되리라는 바람이 착각 속에 머물게 한 것은 아닐까요?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했는데, 어찌 보면 한치 앞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치 앞을 외면하고, 그것이 더욱 한치 앞을 모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 퇴직한 분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내게 이런 시간이 올줄은 몰랐다고 말합니다. 직장에서 퇴직하는 것은 삶의 모습이 180도 달라지는 것인데, 퇴직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 후의 상실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모시던 사장님이 여자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남편은 유력 일간지의 논설위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60대 중반이 되신 사장님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남편 분은 그동안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자신의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암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신문사를 그만 둔 남편은 만날 사람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사장님은 “그동안 당신을 찾던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리, 역할 때문에 당신을 찾았던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여라” 고 조언을 했지만, 남편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세상의 사람들의 의리없음에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고립된 생활을 자초하자 건강 또한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몸에 퍼지는 암의 속도보다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절망감의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끝내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눈감은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살 수밖에 없었던, 일이 없는 자신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산업시대 아버지의 슬픈 초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50 전후의 옛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오간 후 한 분께서 자신이 요즈음 역사에 관심을 갖고있다면서,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논리정연하고 구체적인 사료들을 제시하는 그의 역사 해석에 모여든 사람들 모두 감탄했습니다. 짬짬이 시간을 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는 은퇴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역사 탐구를 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바쁜 중에도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만났던 사람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은퇴 후는 새로운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시간인 듯 했습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노년은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인생의 시기가 아닙니다. 노년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젊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젊음은 좋은 것, 노년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아닌, 노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아 준비하며 기다리는 노년의 시간은 설렘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백발과 늙는 길을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고, 되돌아갈 수 있다면 청춘의 시절로 되돌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조에서처럼? 막으려 하면 오히려 지름길로 와버리는 것이 노년기입니다.
거부하기 때문에 그 상태를 더 고통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제 준비하며 노년을 기다리는 조금은 여유로워진 세대들이 노년기로 진입할 것입니다. 노년이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풍성해질 것이고, 노년기는 우울한 인생의 시기가 아닌 자신이 진정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 볼 수 있는 시기로 새롭게 정의되지 않을까요?

리봄 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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