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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조지 마이클이 동방신기에 충고하다

최종수정 2010.11.25 16:06 기사입력 2009.08.0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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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한류스타 동방신기가 해체 위기에 놓였다. 다섯 멤버 중 세 명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팬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노예계약이니 화장품사업을 위한 계략이니 상반된 주장이 오간다. 결국엔 돈 이야기다. 당사자들의 최고 관심사다. 팬들은 다르다.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밴드의 해체다. '동방신기가 부르는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건 팬들에게 강탈의 차원에 가깝다. 바람난 애인에게 당한 배신처럼, 팬들에겐 이들의 분쟁이 배반이고 배신이다.

가수(혹은 그룹)가 소속사와 분쟁을 겪고 나서 멀쩡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표적인 예를 한 명 들자면, 크리스마스마다 전세계에 울려퍼지는 캐럴 못지 않은 히트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를 부른 조지 마이클이 있다. 분쟁의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교훈은 비슷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는 미끄러져 나갈 뿐 터지는 건 고래등 뿐이다.
조지 마이클 [사진=소니BMG]

조지 마이클 [사진=소니B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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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하거나 다르거나, 조지 마이클의 경우

소녀시대 소녀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인 1980년대 중반 조지 마이클은 전세계 팝시장에서 최고의 '잇보이(It Boy)'였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소녀들의 섹스 심볼이었다. 오죽하면 '난 너의 섹스를 원해(I Want Your Sex)'라는 곡을 만들었을까. 털복숭이 그리스계 영국 청년은 꺼벙이 눈을 가진 미남청년과 '꽝!(Wham!)'이라는 이름의 팝 듀오 왬!을 만들어 순식간에 소녀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꽃미남연쇄소녀기절테러사건'이었다.

초코파이의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케얼리스 위스퍼(Careless Whisper)',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Wake Me Up Before You Go-Go)' 등이 연달아 '빵빵' 터졌고, 조르지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Georgios Kyriacos Panayiotou)라는 본명의 청년은 마이클 잭슨의 뒤를 이를 멜로디메이커로 떠올랐다.
백업댄서에 가까웠던 얼굴마담 친구 앤드류 리즐리와 헤어진 조지 마이클은 솔로 가수로서 메가톤급 히트작을 내놓았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첫 싱글 '페이스(Faith)'는 조지 마이클의 덩실대는 엉덩이를 클로즈업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대히트를 기록했다. '키싱 어 풀(Kissing a Fool)'에 이르기까지 빌보드 싱글차트 히트곡만 여섯 곡이 나왔다. 1년 사이 미국에서만 1000만장이 팔렸다. 올레!

조지 마이클의 진가를 알아본 소니는 그와 계약을 갱신하며 1600만 달러를 제시했다. 물가변동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환율로 단순 계산해도 200억원이다. 단 계약기간은 15년에 8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미 스타였던 마이클이 여러가지 고려하지 않고 계약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 당시 그에겐 만족스러운 계약이었을 것이다.

조지 마이클이 앤드류 리즐리와 결성한 왬!의 두 번째 앨범 커버(1984)

조지 마이클이 앤드류 리즐리와 결성한 왬!의 두 번째 앨범 커버(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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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마이클은 왜 소니의 멱살을 잡았나

몇년간 조지 마이클과 소니의 사이는 좋았다. 소니는 마이클이 대중적인 곡을 만들기 바랐고 그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 앨범 '편견 없이 들어요 1편(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이 1990년 발매됐으나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스타일 탓에 판매량은 200만장으로 뚝 떨어졌다. 소니는 조지 마이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섹시 가이는 섹스 심볼이란 말이 지긋지긋했다. 진지한 음악인이 되고 싶었다. 그는 소니가 자신의 음악적 자유를 제한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강요한다고 불평했다.

1993년 10월 소니와 마이클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급변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의 동방신기와 SM의 관계처럼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마이클은 '계약 무효'를 외치며 소송을 걸었다. 물론 말로 안 되니 법이라는 '주먹'을 빌린 것이다. 사실상 애초부터 조지 마이클이 이기기는 어려운 게임이었다. 법원은 마이클보다 소니 쪽에 가까웠다. 소송은 이듬해 7월까지 이어졌다. 마이클은 "15년의 계약이 남은 음악활동과 맞바꾼 불공정한 구속"이라고 주장했다.

소니의 변호사 고든 폴락이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성적 이미지를 활용했고 이미지를 바꿀 경우 팬들이 많이 떨어져나갈 것임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 그는 반박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의 변호사 마크 크랜은 "마이클이 계약을 지키기 않겠다는 뜻은 아니고 단지 음악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구속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지 마이클은 점점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다.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적었고 법정싸움에 소요된 시간으로 인해 오랜 시간 음악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소니는 결국 베스트앨범 하나를 낼 수 있는 권한과 앞으로 그가 발표하는 앨범의 수익 중 일부를 갖고 그의 새 소속 음반사로부터 4000만달러를 일시불로 받는 조건으로 그를 보내줬다.

6년의 긴 공백 끝에 조지 마이클은 소니에서 드림웍스(영국에선 버진)로 음반사를 옮겨 '올더(Older)'를 발표했으나 반응은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미지근했다. 3년 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송스 프롬 더 라스트 센츄리(Songs From the Last Century)'는 빌보드 앨범 차트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예전의 스타 조지 마이클은 온데간데 없었다.

1980년대 후반의 조지 마이클 [사진=소니BMG]

1980년대 후반의 조지 마이클 [사진=소니B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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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들이여, 소속사와 법정에 가지 마시라

조지 마이클은 소니에서 나오면서 '여기를 향해서는 오줌도 안 눈다'라고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절대로 다시는 소니와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말했다. 2004년 아이러니하게 조지 마이클은 다시 소니로 돌아갔다. 그는 "토미 모톨라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말을 번복한 이유를 설명했다. 모든 문제는 토미 모톨라와의 사이에서 생긴 것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11년이 지나고 200만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간 뒤였다.

조지 마이클의 예와 동방신기의 경우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지 마이클은 자신이 서명한 계약서에 쓰인 글들의 구속력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합법적인 계약서를 놓고 개인이 거대한 회사와 싸워서 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동방신기와 SM의 계약서가 합법적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법정에 가서 싸우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끌면서 키웠던 것은 가장 큰 실수였다.

계약서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동방신기 세 멤버를 탓하기도 SM엔터테인먼트를 탓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다툼이 오래갈 경우 양측에 모두 피해가, 특히 동방신기 멤버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다. 음악활동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팬들의 상처보다는 당사자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조지 마이클의 음악적 몰락이 단지 '화장실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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