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월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취업자가 10만 3천명 감소했고, 올해는 20~40만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경련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작년보다 4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임금을 삭감하겠다면서 채용계획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며칠전 주요기업들이 모여 의견을 같이 한 것은 ‘고용상황이 심각하니 대졸초임을 삭감하고, 기존직원의 임금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고용안정과 신규채용, 인턴채용에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각 기업별 구체적인 계획은 추후 마련키로 했다. 조만간 기업별로 세부계획이 마련될 것이고, 그러면 구체적인 숫자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힘 없는 신입사원의 월급은 깍으면서 경영층 월급은 왜 깍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이미 임원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반납했다. 한화는 임원 임금 삭감을 통해 300명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이며, SK도 임원 성과급을 재원으로 1,800명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임원 연봉을 반납하여 총 1,600명의 인턴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인턴사원 채용을 늘리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인턴은 비정규직의 가장 열악한 형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고용상황은 일자리의 질을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일자리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용위기 상황에서는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졸초임을 깍을 것이 아니라 수백조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08년 9월말 현재 전체 상장사 기준 사내유보금은 393조원이고, 이중 현금성 자산은 약 18% 정도인 71조원이다. 그러나 이 돈은 기업의 금고에 쌓여 있는 돈이 아니라 기업이 통상 원재료ㆍ부품 구입, 수입대금 결재, 인건비 지급, 차입금상환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유하는 필수적인 운영자금이며, ’종자돈‘이다. 지금 당장 보리 고개로 배가 고프다고 해도, 다음해 모종을 위한 종자 쌀을 먹을 수는 없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경련이 조사한바에 따르면 상위 600대 기업의 투자계획은 87조원으로서 작년의 89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07년의 75조에 비하면 16%가 증가한 것이다.

대졸초임 삭감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고육지책이다. ‘노사는 고통분담을 통해 일자리 유지와 나누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노사민정 대타협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의 하나다. 이를 통해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기업들이 더 잘 알고 있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실현가능한 다른 대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노동계는 경제계의 일자리 나누기 노력을 폄훼 할 것이 아니라, 기존직원들도 고통을 분담하여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미 기업차원에서는 노사합의를 통해 임금조정을 선언하여 일자리를 지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근로자들이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내 일자리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결과다.
얼마전부터 정부가 앞장서서 공기업에 대한 임금삭감을 강요하더니, 엊그제는 전경련이 30대 대기업 신입사원의 임금을 많게는 30% 가까이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하여 경기불황으로 가뜩이나 심란한 국민들과 특히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고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

경제상황과 고용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이 힘없는 신입사원의 임금삭감을 추진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참으로 부도덕한 일이다.

더욱이 지난 23일 노동계와 경영계는 물론이고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까지 참여하는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에서 상호신뢰와 고통분담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서 어렵사리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는데,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전에 전경련이 신입사원 임금삭감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합의정신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하여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하면서도 신규채용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어 결국 일자리는 핑계이고 경제위기를 틈타서 인건비를 절감해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신입사원의 임금을 깍고 기존사원의 임금을 동결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인턴사원 채용을 늘리겠다는 발상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야 할 공기업과 대기업이 저임금 비정규직의 가장 열악한 형태인 인턴직만 늘리겠다는 것은 10년전 IMF 금융위기때 기업들이 무분별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를 추구하는 바람에 근로빈곤층을 양산하고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켰던 역사적 과오를 또다시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전경련과 대기업은 이처럼 부도덕하고 문제많은 신입사원 임금삭감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수백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적극 투자하여 경제위기 극복과 경기부양에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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