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의 딥테크]AI 시대의 핵심 자산, '연구데이터' 놓치지 않으려면
국가연구데이터법, 2027년 5월 시행
AI시대 연구데이터, 팔아치우는 기술이 아닌 키워 나갈 자산
출연연 축적 연구데이터 가치 상승
신뢰 구축 및 투명성 확보 필요
4월16일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장에 식품·의약 분야 기업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출연연 사업화 공동추진 태스크포스(TF)가 개최한 맞춤형 기술협의체 자리였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한국식품연구소 안에 오랫동안 축적돼 있던 헬스케어 연구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이날 소개된 데이터는 만성질환자의 식이·임상·유전체 데이터, 암 환자의 항암 부작용 및 전자의무기록 데이터, 장내미생물·대사체 데이터 등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은 자료들이지만, 식품연 내부에서는 연구가 진행될수록 쌓여만 가고 있는 자료다. 연구자들은 데이터를 설명했고, 기업 관계자들은 자사 서비스와 제품 개발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그동안 국가 연구개발(R&D) 성과 활용은 특허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을 이전하고, 라이선스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이 구조 안에서 연구데이터는 주변부에 머물렀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며 상황은 달라졌다. 어떤 데이터를 가졌는지, 그 데이터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 또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데이터가 분석을 거쳐 더 고도화된 정보로 바뀌고, 다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AI 과학자 시대의 핵심 기반이 데이터인 셈이다.
연구 현장에서 나온 데이터는 그대로 산업에 쓸 수 없다. 특히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데이터는 개인정보와 생명윤리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가명 정보라고 해도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연구대상자 동의, 인체유래물 규제,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 데이터 소유권, EMR 반출 문제 등이 얽혀 있다. 연구데이터 활용이 어려웠던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가연구데이터법'은 의미가 크다. 2027년 5월 시행되는 법은 국가 R&D사업에서 생산된 연구데이터를 통합플랫폼 중심으로 축적·개방하고, 후속 연구에 활용하는 체계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연구데이터 관리 의무가 명확하지 않았고, 공개 방식과 권리 인정 체계도 불분명했다. 앞으로는 R&D 기관에 관리 의무가 부여되고,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영업비밀·국가안보 등 비공개 사유도 둘 수 있게 된다.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공개하자는 데 있지 않다. 연구데이터를 국가 자산으로 인식하고, 관리·권리·활용의 기본 틀을 세우는 첫 제도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연구데이터를 AI 시대의 핵심 연구자산이자 국가 R&D 투자의 성과를 축적·확산하기 위한 토대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오랜 기간 육성해온 출연연들이 축적해온 연구데이터가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부상할 기회를 맞은 것도 큰 의미를 지닌다.
데이터를 무조건 더 많이 공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TF 행사에서 제시된 것처럼 원천 데이터의 외부 반출을 최소화하는 API·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활용 모델을 키우고, 가명정보와 2차 분석 데이터의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NST가 제시한 연구데이터를 산업 현장과 연결하는 '데이터 투 마켓(Data to Market·D2M)' 모델과 같은 데이터 가치평가 체계도 필요하다.
특히 국민이 연구데이터의 활용 목적과 보호장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한 설명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연구데이터 활용의 성패는 결국 국민 신뢰에 달려 있다.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정당하게 평가되며, 국내 연구와 산업 발전에 쓰인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 신뢰 없이는 아무리 좋은 데이터도 AI 시대의 자산이 될 수 없다. 국가 연구 데이터 법 역시 통합플랫폼, 전문플랫폼, 연구데이터관리계획, 공개·비공개 기준 등을 통해 공개와 보호의 균형을 잡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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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과학화를 위한 승부는 데이터를 많이 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연구와 산업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나라가 앞서갈 것이다. 연구데이터는 팔아치울 기술이 아니라, 관리하고 키우고 연결해야 할 국가 자산이다.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추격자가 아니라 주도자가 되려면, 지금 연구데이터의 가치를 알아보고 제대로 지키고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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