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투기' 인식이 개발업 가로막아
모험자본 투자 유입 방법 찾아야

[시론]'생산적 부동산'을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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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디벨로퍼협회가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고 산업인프라 개발펀드 조성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별 뾰족한 수가 도출된 것은 아니지만 디벨로퍼 업계가 부동산의 생산적인 역할에 고민이 깊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디벨로퍼들은 말 그대로 토지를 개발해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주변 여건 등을 감안해 적합한 건축물을 지어 토지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펀드 조성을 위한 방법·운영 같은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잖아 워크숍에선 운을 떼는 수준에 그쳤다.

업계의 보다 본질적인 고민은 '부동산은 투기'라는 외부 인식일 것이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부동산 자금 유입을 차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야 하는데, 핵심인 금융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생산적 부동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파트 위주로 굳어진 부동산시장 분위기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주택거래에서 아파트가 차지한 비중은 78%를 웃돌았다. 아파트는 이미 '준(準)화폐' 취급을 받고 있다. 현금처럼 회전성을 갖췄다는 얘기다. 환금성을 갖출수록 자금 쏠림 현상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정부가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주식시장 활황으로 자금이 부동산에서 증시로 갈아타는 '머니무브'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주식시장에서 주택 구입을 위해 빠져나오는 비용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토교통부가 취합한 주택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르면 12억원 이상~15억원 미만 주택을 구입할 때 주식과 채권을 팔아 조달하겠다는 금액 비중은 2020년 1.7%에서 올 3월엔 5.7%로 증가했다. 15억원 이상 고가주택에선 같은 기간 3.2%에서 9.0%로 확대됐다. 증시같이 부동산을 대체할 만한 투자처가 생겼다고 해도 아파트 등 주택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 친환경에너지 시설, 오피스빌딩 등 '생산성을 높이는' 영역은 오히려 찬밥신세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주목받고 있는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확장성이 보이지 않는다. 도심에도 지을 수 있는 소규모 '데이터센터 에지'는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인근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은 점도 있지만 돈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오피스빌딩 역시 크기와 입지에 따라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강남대로 변 오피스 빌딩엔 공실이 없어 값이 뛰는 반면, 대로 안쪽에 위치한 빌딩엔 찬 바람이 분다. 변동성 때문에 섣불리 개발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최근 만난 부동산 디벨로퍼는 "국내에선 사업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돈이 몰리는 주택은 공공 위주 개발을 장려해 기회가 없고 에너지 개발 같은 사업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건설사들과 손잡고 해외에서 사업할 게 있는지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으로 금융의 새 지평을 연 것은 토지 같은 부동산이었다. 토지가 황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개념이 금융을 키운 것이다. 지금은 정반대다. 부동산을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금융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금융의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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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자본 투자는 벤처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토지를 더 가치 있게 쓰는 것도 분명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부동산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디벨로퍼만의 몫은 아니다.


최일권 경제금융담당 에디터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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