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약 만든다' 올해가 표적 첫해…美선 이미 첫 환자 투약 개시[바이오의 새 길, 항노화]①
빅파마 누적 투자 110억달러 돌파
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 첫 임상 개시
노화 바이오마커 14개 임상 합의
①글로벌 신산업으로 자리매김한 '노화와의 싸움'
②빅파마도 못 푼 노화신약, 한국에 열린 '틈새'
③구글보다 빨랐던 삼성 항노화 연구, 왜 13년 뒤처졌나
④한국판 아이멕 꿈꾸는 K빅하트
2026년은 노화가 신약의 직접 표적이 된 첫해로 여겨진다. 미국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 치료제 'ER-100'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아 3월 첫 환자 투약을 개시했다. 노화 자체를 되돌리는 약물이 사람 몸에 들어간 사상 첫 사례다. 한때 실리콘밸리 억만장자의 사적 영역으로 치부됐던 분야가 글로벌 제약산업의 정식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으로 공식 편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화가 더 이상 학술적 탐구에 머물지 않고 거대 자본이 몰리는 신약 개발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영국 장수산업 전문 플랫폼 롱제비티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글로벌 항노화 바이오테크 자금 유입액은 37억4000만달러(약 5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6% 급증했다. 거래 건수도 43건에서 49건으로 늘었다. 연간 투자액은 90억달러(약 13조26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 측면에서 임상 진입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동시에 투자 자금도 빠르게 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항노화는 이미 빅파마의 주류 R&D 영역에 진입했다. 비영리 연구단체 에이징 바이오테크 인포에 따르면 항노화 분야 빅파마 누적 공시 딜 규모는 110억달러(약 16조3306억원)를 넘어섰다. 자금 유입을 이끈 빅딜은 일라이릴리와 인실리코메디신의 협업 계약이다. 지난 3월 최대 27억5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 규모의 신약 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릴리는 선급금 1억1500만달러(약 1707억원)를 지급하고 인실리코의 전임상 단계 경구용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노화 생물학 기반 인공지능(AI) 플랫폼에서 발굴한 물질이다. 노바티스는 노화·재생의학(DARe) 사업부를 신설하고 항노화 바이오테크 바이오에이지와 최대 5억5000만달러(약 8164억원) 규모의 협업을 진행 중이다.
노화를 임상에서 측정할 도구도 합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제론톨로지'에는 국제 노화 연구자들이 델파이 합의 절차를 통해 도출한 14개 노화 바이오마커가 발표됐다. IGF-1, GDF-15, hsCRP, IL-6 같은 분자 지표와 근육량·악력·보행속도 같은 기능 지표, 더니든 페이스 같은 후성유전 시계가 포함됐다. 올해 3월 '바이오마커 리서치'에 게재된 베를린 노화 연구는 14개 바이오마커 가운데 후성유전 노화 속도가 사망률을 가장 잘 예측한다고 보고했다. 임상시험에 활용할 표준 측정 도구의 1차 윤곽이 잡혔다는 의미다.
한국도 정부·기업 동시에 항노화 전선 합류
한국에서도 노화를 신약의 직접 표적으로 삼는 R&D가 정부와 민간 양쪽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6년 보건의료 R&D 시행계획에서 '항노화 및 역노화 재생의료 중개 임상 연구'를 신규 사업으로 신설했다. 총 6년짜리 중개임상 프로그램으로 임상 1상 IND 승인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노화를 질환의 결과가 아닌 직접 표적으로 잡고 세포·유전자치료제 R&D에 예산을 배정한 첫 사업이다.
전통제약사이면서 R&D 강자인 한미약품은 비만 치료제 다음 성장 동력으로 항노화를 제시했다. 글루카곤유사펩티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염증·신경염증 감소 경로를 통해 노화 지연 효과까지 낼 수 있다는 최신 연구 흐름에 주목했다. 릴리가 GLP-1 이후 차세대 동력을 노화 생물학에서 찾는 것과 같은 구조다. 한미는 인크레틴 계열 약물의 임상 프로토콜에 항노화 효능 평가 항목을 반영하고 오믹스 기반 생체 나이 측정 도구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테크 가운데 세계 최초로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상용화에 성공한 메디포스트는 기존 파이프라인인 제대혈에서 항노화 신사업의 단서를 찾았다. 2023년 항노화연구팀을 신설한 뒤 제대혈 혈장의 노화 억제 효과 검증에 착수했다. 최근 국제학술지 '리주베네이션 리서치'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제대혈 혈장이 노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는 결과를 얻었다. 제대혈 유래 성분을 활용해 피부 재생·항노화를 겨냥한 신사업으로 확장하는 구상이다.
"향후 2년, 기대 아닌 데이터가 판 가른다"
전문가들은 향후 1~2년이 항노화 분야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내다본다. 핵심 임상 결과와 초기 투자금 회수 성적표, 빅파마의 차기 포트폴리오 결정이 같은 시기에 집중돼 있어서다. 임상 데이터가 가장 먼저 나온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 ER-100 1상 첫 시그널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도출된다. 릴리-인실리코 후보물질의 IND 진입, 바이오에이지·루베도의 1·2상 데이터도 같은 기간 줄지어 나온다. 노화 표적 카테고리 전체의 임상적 타당성이 처음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자본시장도 회수 성적표를 요구할 전망이다. 1분기 5조5000억원 유입은 1세대 바이오텍의 시리즈 만기와 빅파마 협업 마일스톤을 동시에 검증대에 올릴 전망이다. 1세대 세놀리틱 기업 유니티바이오테크놀로지는 시리즈C까지 2억달러를 조달한 뒤 임상 실패로 사업을 접은 바 있다. 빅파마의 의사결정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2030년대 초까지 만료되는 블록버스터 누적 매출은 3000억달러를 넘는다. GLP-1 시장은 2030년 1500억달러까지 커지지만 그 이후의 메가 카테고리 후보는 노화 생물학이 사실상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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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노화 표적 신약은 가능성 검증 단계가 아니라 카테고리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며 "향후 1~2년의 임상 데이터가 GLP-1 이후 빅파마 성장 축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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